
아침마다 책상 앞에 앉는다.
모니터를 켜면 하얀 화면 한가운데 커서 하나가 깜빡인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얹고도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평생 수없이 많은 글자를 쳤는데, 오늘의 첫 문장은 늘 어렵다.
커서는 재촉하지 않는다.
그저 제자리에서 깜빡인다.
생각해 보면 삶도 그랬다. 지나고 나면 이야기가 되지만, 살아낼 때는 언제나 빈 화면이었다.
서른 해 넘게 다니던 학교를 떠난 뒤 처음 맞은 월요일 아침이 생각난다.
그 시간이면 학교에 있어야 했다. 복도에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뒤엉키고, 교실에서는 의자 끄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종이 울리면 나는 시간표를 따라 움직였다.
그날은 달랐다.
거실에 혼자 앉아 찻잔을 들었다. 차는 식어가는데 갈 곳이 없었다.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
곧 종이 울릴 시간이었다.
평생 기다리던 자유가 왔는데, 나는 자유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표가 사라진 자리에 시간이 남았다.
그제야 알았다. 삶에 시간표가 있는 줄 알았지만, 시간표가 있었던 것은 학교뿐이었다.
젊어서는 자주 남의 시간을 들여다보았다.
누가 나보다 앞섰는지, 나는 어디쯤 와 있는지 헤아렸다. 남의 걸음이 빨라지면 내 걸음도 괜히 바빠졌다.
나이가 들고서야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출발한 적도 없는데, 자꾸 서로의 순서를 매기며 살았다.
이제는 그 순서에서 조금 비켜나 있다.
느려진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걸음으로 걷는 중인지도 모른다.
수십 년을 살았어도 오늘은 처음이다.
어제와 비슷한 아침이지만 나는 오늘을 살아본 적이 없다. 내일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삶에 익숙해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처음인 날들을 하나씩 건너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는 모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고, 앞날을 미리 당겨 보려 했다. 그러나 삶은 내가 그어놓은 줄 위로만 걸어오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 삶을 바꾼 일들은 대부분 계획표 밖에서 찾아왔다.
이제 모른다는 말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른다는 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본다.
커서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깜빡인다.
오늘 무엇을 쓰게 될지 모른다.
오늘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른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인다.
화면에 첫 글자가 찍힌다.
깜빡이던 커서가
한 칸 앞으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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