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삐딱하게 늙어도 괜찮다|퇴직 후 깨달은 삶의 지혜

조금 삐딱하게 늙어도 괜찮다

 

교탁에서 내려온 지 몇 계절이 흘렀다.

삼십이 년 동안 나는 반듯하게 사는 법을 가르쳤다. 학생은 바르게 앉아야 했고, 교사는 바른길을 보여야 했다.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고,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는 것이 교육자의 책임이라 믿었다.

그 세월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도 컸다. 다만 가르치는 일과 바로잡는 일을 너무 오래 같은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퇴직하면 자유로울 줄 알았다.

그런데 교문을 나선 뒤에도 마음속 교탁은 그대로였다.

아침이면 해야 할 일을 헤아렸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어제보다 나은 하루를 보내야 했다. 별다른 성과 없이 해가 저물면 공연히 마음이 불편했다.

누가 출석을 부르는 것도 아닌데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교실에 앉아 있었다.

동네 삼미시장을 지날 때도 그랬다. 굽은 허리로 손수레를 끄는 노인을 보면서도 삶의 자세를 생각했다. 가판대에 시든 배춧잎이 쌓여 있으면 저것부터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나는 혼자 답안지를 채점하고 있었다.

어느 날 소래산을 오르다가 칡덩굴 앞에 멈춰 섰다.

덩굴은 흙길을 가로질러 바위를 휘감고 있었다. 어떤 줄기는 낙엽 밑으로 숨어들었고, 발에 밟혀 꺾인 자리에서는 새순이 돋아났다.

참 볼품없이도 자란다 싶었다.

그런데 녀석은 조금도 난처해 보이지 않았다. 곧게 서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뻗을 곳이 있으면 뻗고, 막히면 돌아갔다.

사람에게도 저마다 자라는 방향이 있을 텐데, 나는 왜 그토록 반듯한 자세를 요구했을까.

그렇다고 반듯함이 잘못은 아니다. 원칙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버틴 세월도 있었다. 다만 그 원칙을 남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한 치의 여유 없이 들이댄 것이 문제였다.

평생 손에 쥐었던 자를 내려놓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한 문장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고, 글의 끝에는 그럴듯한 교훈이 담겨야 할 것 같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처음의 생각은 사라지고 반듯하게 다듬어진 문장만 남는다.

가끔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훈육하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면 베란다로 나간다.

아내가 가꾸는 화분에는 제멋대로 기울어진 새순이 있다. 햇빛이 드는 쪽으로 목을 길게 빼고 있다. 손으로 방향을 돌려놓고 싶다가도 그만둔다.

식물까지 내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며칠 전에는 소래습지에 다녀왔다.

해 질 무렵, 갯벌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칠면초는 낮게 엎드려 있었고, 갈대는 바람에 몸을 눕혔다. 물길은 이리저리 굽어 있었다.

갯벌 가장자리에 서자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똑바로 서 있는 줄 알았는데 그림자는 진흙 위에서 한없이 비뚤어져 있었다.

문득 웃음이 났다.

평생 바르게 서려고 애쓴 사람의 그림자가 저 모양이라니.

그림자를 붙잡아 바로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바람이 불자 갈대가 더 깊이 몸을 숙였다. 곧게 버티는 것만이 살아가는 방법은 아니었다. 때로는 기울어지는 편이 덜 부러지는 법이다.

돌아오는 길,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그렇다고 오랜 버릇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시간을 낭비한 것 같고, 글 한 편 쓰지 못하면 스스로가 못마땅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오래된 교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살아도 되겠니?”

예전 같으면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을 것이다.

이제는 대답 대신 창밖을 바라본다.

오늘도 베란다 화분의 새순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모양이다.

나는 그것을 바로 세우지 않고 한동안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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