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의 연기는 어디로 갔을까

김포에 있는 그곳을 찾을 때면 가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번듯한 건물과 넓은 아스팔트 주차장을 보고 있는데도 내 눈에는 20년 전 풍경이 먼저 들어온다. 흙바닥 위에 비닐 천막을 치고 장사하던 허름한 오리주물럭집이다.
그 시절에는 비닐하우스 안 방바닥에 둘러앉아 오리고기를 구워 먹었다. 비닐 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이치면 가스불이 흔들렸다. 철판에서는 붉은 양념과 오리 기름이 끓었고, 매캐한 연기가 천막 안을 가득 채웠다.
눈이 따가워 손등으로 비비면서도 사람들은 웃었다.
자리가 좁아 모르는 사람과 등을 맞대고 먹기도 했다. 옆자리 숟가락 소리와 웃음소리까지 고스란히 넘어왔다. 신발에는 흙이 묻고 옷에는 음식 냄새가 밴 채 돌아왔다.
불편했는데 이상하게 그 시절이 오래 남았다.
20년쯤 지난 일요일 오후 1시, 여동생 부부와 우리 부부가 다시 그곳을 찾았다.
비닐하우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큰 건물이 들어섰고, 넓은 주차장은 차들로 가득했다. 신관 2층 홀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손님이 많았다.
식당은 커졌지만 철판 위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리주물럭에 김치와 양파를 넣자 붉은 양념이 오리 기름과 섞이며 자작하게 끓었다. 떡사리를 가장자리로 밀어 넣고 익은 고기를 뒤집어 먹는 방식도 예전 그대로였다.
2~3인분은 38,000원. 반찬을 직접 가져다 먹는 셀프 방식도 남아 있었다. 건물은 커지고 식탁은 반듯해졌지만, 철판 하나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는 모습은 오래전과 닮아 있었다.
“오빠, 옛날에 여기 기억나? 비닐 천막에서 먹을 때 신발에 흙 다 묻었잖아.”
여동생이 철판에서 올라오는 김 너머로 웃었다.
제부도 떡사리를 뒤집으며 말을 보탰다.
“그때는 자리가 없어서 모르는 사람하고 등 붙이고 먹었잖아요.”
그 말에 모두 웃었다.
예전에는 자리가 좁아서 붙어 앉았다. 지금은 자리가 넓은데도 우리는 철판 하나를 가운데 놓고 다시 가까이 앉았다.
세월이 바꾼 것과 바꾸지 못한 것이 한 식탁 위에 함께 있었다.
오리고기가 거의 사라지자 공기밥과 김가루를 넣었다. 남은 양념에 밥을 비비고 철판 위에 얇게 눌렀다. 잠시 기다리자 밥알 아래로 노릇한 누룽지가 생겼다.
숟가락들이 철판 바닥을 자작자작 긁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잘 눌은 볶음밥 한 숟갈을 긁어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나는 그 손을 잠깐 바라보았다.
20년 전에도 우리는 이 철판 앞에 있었다. 그때는 조금 더 젊었고, 비닐하우스는 좁았으며, 우리는 방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다. 바람은 비닐 틈으로 제멋대로 드나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불편한 자리가 오래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흙 묻은 신발과 연기 밴 옷까지 그리워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세월은 참 부지런했다.
비닐하우스는 사라지고 흙바닥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가까운 곳에 들어선 식당은 수많은 손님을 품을 만큼 커졌다. 그동안 우리 얼굴에도 세월이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세월도 미처 가져가지 못한 것이 있었다.
철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함께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김포의 바람이 넓은 주차장을 훑고 지나갔다. 옷깃을 여미며 차 쪽으로 걸었다. 오리 기름과 붉은 양념이 졸아들던 냄새가 옷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흙바닥도 없었다.
펄럭이던 비닐 천막도 없었다.
눈을 따갑게 하던 연기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그런데 한동안,
눈앞이 조금 매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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