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의 시간에 견주면 한 사람의 생은 불꽃 한 번 반짝이는 순간보다 짧다. 그 짧은 순간 속에 우리는 태어나고, 사랑하고, 늙고, 사라진다.
그 찰나 속에 내가 있다.
방 안을 둘러본다.
가죽 소파가 벽을 등지고 앉아 있다. 원목 의자는 네 다리로 바닥을 버티고, 책상 위에는 먼지가 얇게 내려앉았다.
이들은 살아 있지 않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내일을 기다리지도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 방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나뿐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넓혀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과 바다, 지구를 이루는 암석, 그 너머의 별과 우주의 먼지까지. 우주의 대부분은 생명을 갖지 않은 물질이다.
그 속에서 생명은 드문 사건이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의 표면에 얇게 돋아난 이끼처럼, 생명은 잠시 나타나 숨 쉬고 움직이다 사라진다.
그런데 인간은 이상하다.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안다. 길가의 돌멩이는 자신의 끝을 걱정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도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다.
인간만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미리 데려와 마음 한구석에 앉혀 놓는다.
나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부고를 읽으면서도 내 차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데, 내 죽음만은 자꾸 먼 곳으로 밀어낸다.
아마 살아 있다는 감각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손끝은 따뜻하고 심장은 뛴다. 배가 고프면 밥을 찾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걸음을 멈춘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내 마음도 따라 아프다.
이렇게 분명하게 살아 있는데 어느 날 내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오래 남으려 한다.
돈을 모으고 집을 짓고 이름을 남긴다. 무언가를 많이 가지면 조금 덜 사라질 것처럼 움켜쥔다.
하지만 오래 남는 것과 영원한 것은 다르다.
의자도 언젠가는 썩는다. 바위도 깎이고 별도 변한다. 다만 그들의 시간이 인간보다 길어 보일 뿐이다.
나도 다르지 않다.
한동안 ‘나’라는 이름으로 모여 있던 것들은 언젠가 흩어진다.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생명의 일부가 되거나 이름 없는 먼지로 남을 것이다.
그것을 반드시 비극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쩌면 죽음은 모든 것이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나’라고 부를 경계가 없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도 조금 달리 보인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아침은 왔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해는 뜨고 계절은 바뀔 것이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한때는 그 사실이 서운했다.
이제는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다.
반드시 위대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영원히 남을 무엇인가를 만들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도 아니다.
우주에서 내 삶이 한 점에 불과하더라도, 그 한 점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우주의 의미가 없다고 해서 내 삶의 의미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밥 한 끼를 먹는 일.
따뜻한 차를 마시는 일.
저녁 창문으로 들어오는 노을을 한동안 바라보는 일.
말없이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일.
그 순간들은 우주의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바꾼다.
어쩌면 삶의 의미는 원래 그 정도 크기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방 안을 바라본다.
소파는 그대로 있고 책상도 말이 없다. 원목 의자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바닥을 딛고 있다.
수십 년 뒤에도 저 의자의 일부는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그때 나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오늘은 다르다.
의자는 햇빛을 받아도 따뜻하다는 것을 모른다.
노을을 보아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곁에 앉아도 그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안다.
언젠가 나도 흩어질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의 빛이 조금 더 선명하다.
나는 의자에 손을 올려본다.
아직은,
내가 의자보다 따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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