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부부 상담 프로그램을 본다.
화면 속 부부는 마주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한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사람은 입을 닫는다. 오래 묵은 서운함이 말끝마다 묻어난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저 말을 왜 저렇게 하지.”
“한마디만 참으면 될 텐데.”
“먼저 미안하다고 하면 끝날 일 아닌가.”
나는 어느새 상담가가 되어 있다.
남편의 잘못도 보이고 아내의 잘못도 보인다. 누가 한발 물러서야 하는지, 어느 순간 사과해야 하는지도 훤히 보인다.
남의 문제는 이상하리만큼 잘 보인다.
그러다 문득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만약 저 카메라가 우리 집에 들어온다면 어떨까.
내가 아내와 이야기하는 모습, 사소한 일에 표정이 굳는 순간, 듣는 척하면서 듣지 않는 모습까지 며칠 동안 찍는다면.
화면 밖의 사람들은 나를 보며 뭐라고 할까.
얼마 전 아내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응, 알았어.”
아내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말을 멈췄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았다. 피곤했고, 잠깐 휴대전화를 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면 속 남편이 아내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모습을 보자 그날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화면 속 남편에게 혀를 차리고 있었다.
남의 잘못에는 해설자가 되면서 내 잘못 앞에서는 변호사가 된다.
남의 고집은 아집이고 내 고집은 소신이다. 남의 무관심은 상처지만 내가 무심했던 날에는 피곤했다는 사정이 붙는다.
사람은 자기에게 꽤 너그러운 판사다.
부부 관계를 흔드는 것도 거창한 사건만은 아닐 것이다.
건성으로 던진 대답 하나.
귀찮다는 표정 하나.
상대가 말하는 동안 바라본 휴대전화 하나.
그런 작은 장면에는 대개 카메라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무심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화면 속 부부에게도 내가 모르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방송에 나오지 않은 밤이 있고, 카메라가 담지 못한 상처가 있을 것이다.
몇십 분의 화면으로 몇십 년의 결혼을 판단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부부 사이에서 가장 보기 어려운 사람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의 인생은 화면으로 보지만 자기 인생은 화면 밖에서 산다.
화면 밖에는 언제나 사정이 있다.
피곤했고, 바빴고, 그런 뜻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끔 그 사정이라는 것이 내 잘못을 가려주는 커튼이 된다.
TV에서는 남편이 다시 자기 사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냥 미안하다고 하지.’
그 순간 입을 다물었다.
낮에 아내에게 건성으로 대답했던 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화면 속 남편의 얼굴 뒤로 잠깐 내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는 더 이상 혀를 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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