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축이 먼저 닳는 이유|현관에 남은 신발이 들려준 시간의 기록

 

신발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끈이 해지고 밑창이 얇아져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상하게도 마지막까지 눈에 남는 곳은 발끝이 아니라 뒤축이다.

둥글게 닳은 뒤축을 보면, 그 신발이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어릴 적 우리 집 현관에는 아버지의 검은 구두가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광은 잃지 않았지만 뒤축만큼은 유난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아버지, 구두 새로 사세요.”

그러면 아버지는 구두를 한 번 뒤집어 보더니 늘 같은 말을 했다.

“아직 걸을 만하다.”

그 말은 오래도록 절약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 내 신발에도 같은 흔적이 생겼다.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 신발을 벗는 순간이었다.

문득 뒤축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이 둥글게 닳아 있었다.

그 모양이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의 구두와 꼭 닮아 있었다.

그제야 오래전 현관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람은 앞으로 걸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걸음은 뒤축에서 시작된다.

온몸의 무게를 가장 먼저 받아내는 곳.

다음 한 걸음을 위해 가장 먼저 땅을 딛는 곳.

그래서 뒤축은 말없이 먼저 닳는다.

비 오는 날도,

눈 쌓인 골목도,

급하게 뛰던 횡단보도도,

뒤축은 묵묵히 지나왔다.

길은 기억하지 못해도 신발은 기억한다.

얼마 전 신발장을 정리하다가 오래 신은 운동화를 손에 들었다.

버리려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 신발을 신고 첫 출근을 했고,

병원으로 뛰어가던 날도 있었고,

아무 이유 없이 한강을 오래 걷던 저녁도 있었다.

사진은 그날의 얼굴을 남겼지만,

신발은 그날의 무게를 남기고 있었다.

구둣방 앞을 지나면 가끔 걸음을 늦춘다.

닳은 뒤축을 갈아 새 고무를 붙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사람도 저렇게 닳은 마음을 조용히 덧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신발도 결국 같은 자리부터 다시 닳는다.

걸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삶도 그렇다.

현관은 하루가 끝나는 곳이다.

신발은 그곳에서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말없이 벗겨진 신발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둥글어진 뒤축 하나가 지나온 시간을 대신 말해 준다.

누구를 만나러 갔는지,

얼마나 서둘렀는지,

몇 번이나 돌아섰는지는 알 수 없어도,

성실하게 땅을 디뎌 온 시간만큼은 감출 수 없다.

오늘도 신발을 벗어 현관에 나란히 놓는다.

저녁 햇살이 창문을 돌아와 닳은 뒤축 위에 가만히 머문다.

문득 아버지의 구두가 떠오른다.

“아직 걸을 만하다.”

그 한마디는 구두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노을은 오래된 신발에도 새 신발과 같은 빛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뒤축은 아무 말 없이,

오늘도 하루를 견딘 사람의 시간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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