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진창길에 빠진 어린 시절 | 1960~70년대 시골 흙길의 추억

비 오는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나는 논둑길을 따라 뛰고 있었다. 잿빛 하늘 아래 마을 길은 이미 진창이었다. 장화를 신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찍퍽, 찍퍽”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오른발이 푹 꺼졌다.

발은 빠져나왔는데 장화는 진흙 속에 박혀버렸다. 중심을 잃은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차가운 흙탕물이 바짓가랑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뒤따라오던 친구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야, 거긴 소도 빠지는 데야!”

한 녀석은 나뭇가지를 들고 와 진흙을 팠고, 다른 녀석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우리는 낑낑거리며 장화를 끌어냈다.

“뻐억.”

진흙이 장화를 놓아주는 소리가 났다.

장화 속에는 누런 흙물이 절반쯤 차 있었다. 친구들은 내 꼴을 보고 또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흙탕물에 젖은 무릎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했다.

그 시절 시골길은 늘 그런 식이었다.

1960~70년대 시골 마을 대부분은 흙길이었다. 지금처럼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포장이 된 길은 드물었다. 비가 오면 길은 금세 질척한 진창으로 변했고, 겨울 눈이 녹는 초봄이면 발목까지 빠질 만큼 흐물흐물해졌다.

소달구지가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바퀴 자국이 남았다. 길 가장자리에는 소똥이 널려 있었고, 축축한 흙냄새와 짚 냄새가 바람을 타고 떠돌았다.

사람들은 늘 흙을 밟고 살았다.

새벽이면 아버지는 검은 고무신에 흙을 묻힌 채 외양간으로 갔다. 어머니는 마루 끝에 양동이를 놓고 우리 형제들의 발을 씻겼다. 찬물에 발을 담그면 발등에 붙은 흙이 천천히 풀어졌다.

어머니는 늘 말했다.

“가만있어라. 흙 다 튄다.”

그 목소리에는 꾸중보다 웃음이 더 많았다.

가끔 읍내 트럭이 마을 길에 빠지는 날도 있었다.

바퀴는 헛돌며 진흙만 튀겼다. 운전사는 연신 액셀을 밟았지만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면 어디선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논에서 일하던 아저씨도 오고, 지나가던 아이들도 달려왔다. 누군가는 볏짚을 가져왔고, 누군가는 삽으로 바퀴 밑 흙을 퍼냈다.

“영차!”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차를 밀었다.

누군가는 미끄러져 넘어졌고, 누군가는 진흙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다들 웃었다. 차가 겨우 빠져나오는 순간에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은 참 불편했다.

비만 오면 신발이 더러워졌고, 길은 늘 질척거렸다. 지금처럼 깨끗한 도로도 없었고, 편리한 자동차도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절 사람들 마음은 지금보다 덜 메말라 있었다.

누군가 길에 빠지면 함께 붙잡아 주었고, 차가 진창에 빠지면 온 동네가 달려나왔다. 서로의 삶이 흙탕물처럼 뒤섞여 있었지만, 그래서 더 외롭지 않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이제 시골길은 대부분 콘크리트로 포장되었다. 택배차가 산골 끝집까지 들어가고, 운동화에 흙 묻을 일도 거의 없다.

아이들은 흙길보다 휴대전화를 더 가까이한다.

세상은 편리해졌고 길은 반듯해졌다.

그런데 사람들 마음까지 예전보다 가까워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아직도 무의식처럼 마른 땅을 골라 걷는다. 그리고 문득 어린 시절 진창 속에 박혀 있던 장화 한 짝을 떠올린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쉽게 빠지지 않던 그 장화처럼, 내 어린 시절 역시 세월 속 깊은 곳에 아직 단단히 박혀 있다.

어쩌면 사람이 그리워하는 것은 깨끗한 길이 아니라, 엉망진창이던 시절 함께 웃어주던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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