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산 대야동 카페거리, 청화공간과 소전미술관이 다시 이어낸 오래된 시간

소래산 능선이 순해지는 곳, 호현로155번길의 굽은 경사를 따라 천천히 내려오다 보면 길은 어느 순간 다른 시간을 품기 시작한다. 한때 이 길은 소래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과 대야동 주민들만 드나들던 평범한 산자락이었다. 흙먼지가 묻은 등산화와 조용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하루를 채우던 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에는 커피 향이 번지고, 빵 굽는 냄새가 골목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야동 산자락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머무는 카페거리로 조금씩 변해 갔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6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한옥, 청화공간이 있었다. 요즘 새롭게 지어 올린 한옥과는 다르게 이곳은 오랜 세월 누군가의 삶이 머물렀던 집을 그대로 품고 있다. 검게 길들여진 대들보와 천장의 서까래, 묵직한 목조 기둥은 시간을 감추지 않는다. 집주인은 그 오래된 뼈대를 허물지 않았다. 안채와 사랑채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열고, 높았던 담장을 낮춰 넓은 마당과 잔디를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오래된 집은 그렇게 과거를 간직한 채 오늘의 쉼터로 다시 살아났다.

청화공간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기 시작하자 산자락에도 변화가 이어졌다. 소래산 들머리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가진 카페가 7~8곳 들어섰다. 붉은 벽돌의 따뜻함을 담은 공간도 있고, 커다란 통유리 너머로 소래산의 사계절을 한 폭의 풍경처럼 담아낸 공간도 있다. 어느 곳 하나 자연을 밀어내지 않고 산의 풍경에 조용히 기대어 서 있다는 점이 닮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길을 화려한 상업거리보다 오래 머물고 싶은 대야동 카페거리로 기억한다.

이 거리의 변화는 오래된 예술 공간에도 이어졌다. 오랫동안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과 컬렉션을 품고 있던 소전미술관은 최근 카페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한때 작품을 감상하던 공간에는 이제 차와 커피 향이 흐르고, 정갈한 석조 정원은 누구나 머물 수 있는 쉼터가 되었다. 예술을 품었던 건물은 본래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일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불과 몇 걸음 사이에서 60년 된 한옥의 목조미와 옛 미술관이 품었던 석조 정원의 아름다움을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 길만이 가진 특별한 풍경이다.

돌이켜 보면 대야동 카페거리는 계획된 관광지가 아니었다. 오래된 한옥 하나가 새로운 숨을 얻었고, 그 곁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카페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오랫동안 미술관이었던 공간마저 카페로 다시 태어나면서 산자락 전체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연결되었다. 변화는 있었지만 소래산의 풍경은 그대로 남았고, 오래된 마을의 결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은 새로 만들어진 거리가 아니라 오래된 시간이 천천히 현재와 이어진 길에 가깝다.

소래산을 내려온 사람들은 이 길에서 걸음을 늦춘다. 흙먼지를 털어낸 등산화는 어느새 한옥 툇마루 앞에 멈추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면 서두르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는다. 오래된 서까래 아래에서 마시는 차, 미술관이었던 공간에서 향을 음미하는 커피, 그리고 담장 너머로 불어오는 산바람은 서로 다른 시간이 한자리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호현로155번길은 오늘도 소래산을 오르는 길이자, 오래된 공간들이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길이다. 대야동 카페거리는 시간을 허물어 새것을 세운 곳이 아니라, 시간을 품은 공간들이 다시 사람을 맞이하기 시작한 곳이다. 그래서 이 길을 걷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카페 한 곳의 이름보다도, 오래된 건물과 산, 그리고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낸 느린 풍경이다. 그것이 소래산 아래 대야동이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가장 깊은 매력일 것이다.

 

 

*관련글 보기

「속물」 – 욕망과 유방의 상징을 통해 본 현대시의 자의식

재촉하지 마요 – 유머 버전

추어탕 가는 미꾸라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선비천사 브런치 바로가기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