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이 이어진 오후였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폭염 그늘막 아래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까이 섰지만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늘 밖은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다.
신호등은 아직 빨간불이었다.
몇십 초.
평소 같으면 금방 지나갈 시간이었지만 폭염 속에서는 그 몇십 초도 길었다.
초록불이 켜지자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길을 건넜다.
잠시 뒤 다시 빨간불.
또 다른 사람들이 말없이 그늘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오래전 여름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신호등 기둥이 만드는 가느다란 그림자를 따라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옮기곤 했다.
몸 하나 겨우 숨길 그늘을 서로 양보하며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가방으로 얼굴을 가렸고,
어떤 사람은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그때는 여름을 견디는 것도 각자의 몫이었다.
이제는 도시가 조금 먼저 여름을 준비한다.
폭염 그늘막은 거창한 시설이 아니다.
기둥 몇 개와 천막 하나.
하지만 그 작은 그늘 하나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꾸고, 기다림을 바꾸고, 여름을 견디는 방식까지 바꾸었다.
좋은 공공시설은 설명이 필요 없다.
사람들이 먼저 찾아간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얼마가 들었는지 몰라도,
필요하면 몸이 먼저 기억한다.
폭염 그늘막은 직사광선을 막고 온열질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설치된 생활밀착형 공공서비스다.
이제는 여름이면 가장 먼저 사람들이 찾는 도시의 풍경이 되었다.
사람들은 특별한 시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없는 곳에서 존재를 느낀다.
햇볕 아래 신호를 기다리다 보면 먼저 이런 생각이 든다.
‘여기에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공공서비스는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크게 보인다.
비슷한 경험은 버스정류장에서도 한다.
예전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막막했다.
언제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광판에 이렇게 뜬다.
‘3분 후 도착.’
단 한 줄의 정보가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겨울이면 온열의자가 차가운 몸을 녹여 주고, 일부 지역의 스마트 버스정류장은 폭염과 한파를 함께 견디게 해 준다.
도시는 거대한 건물을 세우는 것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
사람이 덜 힘들게 기다리도록 만드는 것에서도 발전한다.
행정학에서는 시민이 생활 속에서 공공서비스를 반복적으로 경험할수록 행정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이론을 오늘 횡단보도에서 먼저 보았다.
아무도 그늘막을 칭찬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사람은 말로는 무엇이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행동은 쉽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 가장 필요한 곳이고,
사람들이 먼저 찾는 곳이 가장 좋은 공공서비스다.
신호가 바뀌자 모두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에는 다시 뜨거운 햇볕만 남았다.
그러나 작은 그늘은 다음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좋은 행정은 가장 먼저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도시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거대한 기념비보다,
사람을 잠시 쉬게 하는 작은 그늘 하나로 더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사람은 정책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그 정책 덕분에 덜 힘들었던 하루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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