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는 미사 반주자였습니다.
작은 본당의 오래된 피아노 앞에 앉아
늘 같은 자세로, 같은 눈빛으로 반주를 했죠.
자신을 드러내기보단,
누군가의 기도를 조용히 받쳐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일이면 누구보다 먼저 성당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성가집을 펼쳐놓고
미리 손가락을 풀며 연습을 하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아내는 자는 듯 조용히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뇌출혈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의식 없이 누워 있는 아내 곁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녀가 늘 연주하던 그 성가,
“주여, 나의 마음을 당신께 드리나이다”
그 멜로디를 속으로 되뇌일 뿐이었습니다.
세 달.
길고도 짧았던 시간.
기도는 했지만,
그 기도는 기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장기기증… 동의하실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오래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해 두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같았습니다.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 옆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녀의 손은 아직 따뜻했지만
이제 그 따뜻함은 누군가에게 전해질 시간.
아내가 반주하던 미사처럼,
삶의 마지막도 조용히 흘러갔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조용히 자리에서 내려오는 사람처럼.
며칠 뒤, 병원으로부터 짧은 편지가 왔습니다.
아내의 장기들이
여러 사람에게 이식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누구인지, 어디서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안에 아내의 숨결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더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앉던 사람이 없으니,
성가도 조금은 덜 따뜻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나는 믿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또 다른 생명을 위한 반주를 하고 있으리라.
심장이 되어, 눈이 되어,
삶을 이끄는 조용한 멜로디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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