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생의 흔적에 바칩니다
어머니가 꽃상여를 타셨다.
벚꽃과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봄날,
나비들은 아지랑이 사이로 꽃과 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상여소리가 구성지게 울리고,
자식들이 여비를 새끼줄에 끼워 넣자
꽃상여는 꿈결처럼 흔들리며 북망산으로 향했다.
상여꾼들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어깨에 메고,
힘든 줄도 모르고 소리꾼의 가락을 따라가며 후렴을 되뇌었다.
오늘은 동네잔치 같았다.
상여 뒤로 길게 늘어선 사람들,
뒤따라오는 동네 개들,
잡은 돼지는 튼실한 놈으로,
부침개와 전도 풍성히 마련했다.
이날만큼은
모두가 어머니를 기억했다.
살아생전 그렇게 힘들게 하시던 아버지도
붉어진 눈으로 조용히 상여 뒤를 따르셨다.
저승은 말이 없다.
이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미지근한 눈물을 흘리며 곡을 하는 것뿐.
사람들은 이 순간만큼은,
이승과 저승의 단절을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 건너편 선산에 묻히셨다.
어머니의 삶을 기억하는 이는
이제 몇몇 친지와 동네 사람들뿐일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어머니를 가슴 깊이 꼭꼭 묻었다.
곡을 하지 않는 자식들을 보고
동네 어른들은 무심하다며 혀를 찼지만,
자식들은 말없이,
흙을 꼭꼭 밟으며 눈물을 삼켰다.
어머니는 열여덟에 시집오셨다.
어리광 부리며 자랐던 그분은
처음 보는 남편을 따라
가난과 업신여김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다.
시집온 며칠 후부터
새벽 다섯 시, 장독대 앞에서 정화수를 올리고 기도하셨다.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쇠죽을 쑤었다.
겨울이면 저수지로 빨래를 하러 가셨고,
등엔 젖먹이를 업고
손에는 호미 하나 들고 밭으로 향하셨다.
남편과 시아버지는 자주 술을 드셨고
분노를 밥상과 마당에 쏟아내셨다.
어머니는 부뚜막에 엎드려 울었지만
다음날엔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을 하고, 바느질을 하셨다.
어머니의 손에는 늘
호미가 쥐어져 있었다.
작은 호미 하나로 몇 마지기의 밭을 매셨고,
돌아서면 잡초는 다시 자라 있었다.
잡초의 질김과 어머니의 질김이
누가 더 버티는지 겨루는 듯했다.
호미는 닳아 반들반들 작아졌고,
어머니의 손도, 얼굴도
그 호미처럼 닳아 작아지고 투명해졌다.
어머니는 종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귀한,
임금도 갖지 못할 종이었다.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셨고
게으른 식구들을 다독여 일으키셨고
웃음 없는 집에 웃음을 심으셨다.
집안이 조금씩 나아지자
이웃과 거지들을 돌보셨다.
밥을 해 먹이고, 쌀을 퍼주셨다.
어머니의 손은 사람을 살리는 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꽃처럼 늙어가셨다.
그 늙음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자식들은 각자 분가하고,
서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다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처럼 먹던 어머니가
냉면 한 그릇을 다 드시지 못하셨다.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어머니는 병명을 끝내 모르셨다.
누구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병원 침대 위의 어머니는
너무 작았다.
주먹만 한 얼굴,
기역자로 굽은 허리,
쇠갈고리처럼 굳은 손가락.
그 손엔 반지 하나 없이,
굳은살만 매달려 있었다.
식구들은 그제야
어머니의 삶을 읽었다.
평탄했던 우리 삶은,
어머니의 몸으로 막아낸 바람이었음을.
“얘야… 재미있게 살아라… 싸우지들 말고…”
그 말씀이 마지막이었다.
“엄마… 정말 훌륭하게 사셨어요.”
큰아들이 속삭이자,
어머니는 마지막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침대 위엔
작고 낡은 호미 하나가
문장 끝의 물음표처럼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사라졌지만,
그분의 호미는
우리 마음속 밭을
지금도 조용히 매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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