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오가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품는 마지막 소망은 다름 아닌 ‘집’이다.
귀환 명령보다도, 상관의 격려보다도
그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건
조용한 골목길, 현관문 너머의 익숙한 공기다.
집이란 단어는 이상할 정도로 따뜻하다.
무엇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는 말인데,
들으면 마음이 풀린다.
나는 한 장례식장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 있다.
어머니의 관 앞에서 딸이 눈물로 외쳤다.
“엄마, 우리 집에 가자...”
그 짧은 말에 사람들이 울었다.
그녀에게 집은 곧 어머니였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집’이
그날 무너졌다.
집은 단순한 벽과 지붕이 아니다.
집은 기억이고, 온기이며, 관계다.
누군가 늦게 들어올 때까지 켜둔 불빛.
식탁 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TV를 보던 시간.
그렇게 우리는 매일,
작은 장면들로 집을 짓는다.
세상은 늘 예고 없이 흔들린다.
사람은 바쁘고, 마음은 지친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찾는다.
도망치듯 들어와 문을 닫고
잠시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쉴 수 있는 곳.
하지만 집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묵묵히 끓여준 국 한 그릇,
들어오는 발소리를 기다리던 시선,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괜찮아”라는 말이
집을 집답게 만든다.
모든 사람이 돌아갈 집이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집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지쳐 돌아온 이를 조용히 감싸주는 존재.
집은 목적지가 아니라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시작점이다.
길을 잃어도, 상처 입어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
그게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결국, 집은
우리가 다시 ‘사람’이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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