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기 위해 먹을까.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 걸까.
요즘 세상을 보면, 후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유튜브, 블로그, TV.
온통 음식 이야기다.
먹는 것은 이제 문화가 되었고, 위로가 되었고, 삶 그 자체가 되었다.
가족이 모이거나,
회사 동료들과 회식이 잡히거나,
캠핑을 간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음식이 떠오른다.
삼겹살.
불판 위에 고기가 닿는 순간,
'치익' —
기름이 튀며 눈앞을 스치고,
고소한 냄새가 허기를 자극한다.
연기 사이로 퍼지는 숯불 향기,
불꽃에 비치는 얼굴들.
젓가락에 들린 삼겹살은 미세하게 떨리고,
육즙이 안쪽에서 부글거리다 입안에서 터진다.
상추 위에 삼겹살을 얹고,
파무침을 올리고,
마늘 한 쪽, 쌈장 한 숟가락 얹어
입을 크게 벌려 삼킨다.
짭짤한 기름맛,
쌉싸름한 채소의 향,
차가운 맥주 거품이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모든 피로가,
잠시만큼은 입안에서 녹아내린다.
하지만 그 고소함 뒤에는
늘 미묘한 불안이 따라붙었다.
기름진 음식,
성인병,
그리고 막연한 죄책감.
기름이 불판 위로 튀어오를 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동행했다.
그러나 어느 날,
BBC Future 글로벌 저널이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돼지기름이
가장 건강한 음식 20가지 중 8위에 올랐다고.
완두콩도, 토마토도, 고등어도
당당히 제치고.
오랫동안 누명을 써왔던 돼지기름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염증을 완화하며,
혈관 건강을 돕는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숯불 앞에서 삼겹살을 구우며
괜히 웃었다.
미안함 대신,
조금 더 당당한 마음으로
젓가락을 들어올렸다.
삼겹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건 작은 축제고,
소박한 평화고,
불 앞에서 서로를 마주보게 하는 연대다.
불 앞에서는
직급도, 나이도, 체면도 내려놓는다.
모두 같은 자세로,
고기를 굽고, 뒤집고, 나눈다.
누구도 우위에 서지 않는다.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다.
그렇게,
치익 치익 고기 굽는 소리 사이로
우리는 웃는다.
그러나 때때로,
굽다가 탄 고기처럼
삶도 불쑥 어긋날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젓가락이 엉겁결에
내 쌈을 집어가 버릴 때처럼,
의도치 않은 서운함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기를 굽고,
상추에 싸서,
다시 웃으며 건배한다.
삼겹살 한 점.
그 안에는 어쩌면,
"오늘도 잘 버텼다"는
서툰 고백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불꽃을 타고 익어가는 삼겹살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천천히, 서툴게, 그러나 분명히
익어간다.
삶이 너무 허기질 때면,
나는 삼겹살 불판 앞을 생각한다.
불꽃 위에서 한 점 고기가 천천히 익어가듯,
나도 내 삶을 천천히 구워내고 있다고.
그리고 조심스레 되뇌인다.
삼겹살처럼,
건강에 좋은 삼겹살 기름처럼,
오늘도 우리는 불꽃 속에서 조금씩 삶을 익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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