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비 속에서
문득 낭만을 느낀다.
빗방울이 창을 두드릴 때마다
가슴 한켠이 두근거린다.
어쩌면 이 설렘은
어릴 적 기억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면 흙냄새와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누군가는 퀴퀴하다고 하겠지만
내겐 그 냄새가 그리움이다.
비닐우비 입고 논일하던 이웃들,
빗속에서 흥얼거리며 벼를 심던 풍경.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정겨운 장면이었다.
어른들은 말했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축구공을 찾던 어린 시절.
비 오는 날 공 차는 게 뭐가 이상하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수함.
그 순수함이 지금은 그립기만 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낡은 코트 하나 걸치고
시집 한 권 들고
비를 맞으며 등하교하던 나.
비에 젖은 채
모든 고민을 짊어진 듯 걸었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 시절만의 ‘폼’이 있었다.
비는 언제나 청춘의 그늘과 함께였다.
무심히 떨어지는 빗소리는 늘 아련하게 들려온다.
세상의 먼지를 씻어내듯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가끔은 그 빗속 안개 너머
그리운 누군가가 나타날 것 같은 착각.
그 착각이 싫지 않다.
오히려 따뜻한 기대감이 된다.
비 오는 날엔 가족 모두 집에 모였다.
빈대떡을 부치고
함께 나누어 먹던 날.
전 부치는 소리,
구수한 냄새,
창밖의 빗소리.
모두가 어우러져
그립고 따뜻했던 시간들.
비는 단지 날씨가 아니다.
비는 기억이고, 감정이며, 하나의 풍경이다.
오늘도 이 비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조용히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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