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 부엌은 아직 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시간.
나는 북어 한 마리를 꺼낸다.
찬물에 담그니 바삭하게 말랐던 몸이 천천히 풀려간다.
시장 골목에서 골라 들고 온 그 순간이 떠오른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잔잔한 주름이 선한 녀석이었다.
오늘은 이 녀석으로 너를 위로해주려 한다.
어제도 문 소리가 새벽녘에야 들렸지.
술 냄새에 말은 없었지만,
너의 굽은 어깨가 말해주더라.
세상 밖이 얼마나 버거웠는지를.
솥에 참기름을 두르고 북어를 달달 볶는다.
고소한 냄새가 퍼질 때 마늘을 넣고, 대파를 송송 썰어 넣는다.
끓기 시작한 국물에 달걀을 풀며 나는 생각한다.
이 국 한 그릇이
오늘 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덥혀주면 좋겠다고.
잠결에 눈 비비며 주방에 나온 너는
아직 어제의 그림자를 짊어진 채 앉는다.
국물 한 숟갈 떠넣는 그 순간,
나는 안다.
말보다 따뜻한 건 이 국물이라는 걸.
북어는 먼 바다에서 이 집으로 왔다.
찬 바람에 말려지고, 손에 들려오고,
지금 이 아침엔 네 위장을 데우고 있다.
사랑은 별게 아니다.
이렇게 국물처럼, 뜨겁고 묵묵하게 배어드는 것.
오늘도 나는 너를 위해 국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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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준호 님께 드리는 헌시 고요한 새벽, 누구보다 먼저 문을 여셨고어두운 밤이면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나가셨습니다.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학교를 지켜오신당신의 손에는 언제나 흙먼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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