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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수필

신천동 샌님, 산에서 숨을 고르다

by 선비천사 2025. 4. 18.

 

 

샌님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간다.

마음은 늘 시골을 그리워하지만
도시를 떠날 용기는 없다.

 

그저 가족과 소박하게
알콩달콩 살고 싶은 사람이다.

 

술은 즐기지 않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는 좋아한다.

삶은 늘 무겁고,
자신은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예수처럼 참지도 못하고,
부처처럼 내려놓지도 못하고,
공자처럼 예를 다하려다
혼자 상처받는다.

 

답답한 날엔 베란다 문을 연다.
그 앞에 소래산이 있다.

산은 말없이 거기 있다.
도시 속에서 조용히, 묵묵히.

 

결국 신발을 신고
산을 향해 걷는다.

 

처음엔 힘들다.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하지만 산은 안다.
힘들 땐 평지를 내주고,
쉴 만하면 다시 경사를 준다.

 

산은 도시 사람들의 고향이다.
누구든 말없이 안아준다.

아이도, 어르신도,
상처받은 이도
산에 올라 숨을 고른다.

 

샌님도 오른다.
들숨엔 산의 정기를 마시고,
날숨엔 마음의 찌꺼기를 내쉰다.

 

매미가 울고,
새들이 지저귀고,
작은 계곡물 소리가 들린다.

산속은 조용한 듯 요란하다.
그 안에서 샌님은 지휘자가 된다.

 

버섯은 악보가 되고,
바위는 북이 되고,
나무는 현악기가 된다.

그 속에서 샌님은 노래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네.
지금은
조금 느려도 괜찮다네.”

 

힘겨운 숨이 지나고
몸이 산에 적응되면
마음도 가벼워진다.

 

8부 능선을 넘으며
샌님은 눈물을 흘린다.

억울해서가 아니다.
불행해서도 아니다.

단지

 

“사는 게 장난이 아니구나.”

 

그 말이 가슴에 와닿을 뿐이다.

 

산꼭대기에 닿는다.
바람이 땀을 식히고,
구름은 천천히 흐른다.

산 아래 도시가 보인다.
욕망도 보이고, 거리도 보인다.

 

산 위 나무들은 키가 작다.
더 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산 아래 나무들은 키가 크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란다.

 

삶은 공평하다.
오른 자는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멀리 올라간 자일수록
멀리 내려가야 한다.

 

소유할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
그걸 우리는 ‘삶’이라 부른다.

 

샌님은 산을 내려오며
나직이 노래를 부른다.

 

 

*관련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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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학생들의 눈을 먼저 봤을 겁니다

― 한 퇴직 교사의 이야기 퇴직 후, 아내와 함께 저녁 식탁에 앉으면 가끔 되묻습니다.“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어요?” 아내는 단호합니다.다시 태어난다면 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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