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흙길은 계절마다 소리를 달리 냈다.
장마 뒤엔 질퍽질퍽, 가을볕 아래선 바삭바삭.
그 길 위를 느릿느릿 지나가던 건 소달구지였고,
마을마다 꼭 한 마리씩 있던 소는 고삐를 달고 농부의 뒤를 따랐다.
길엔 자연스레 소똥이 떨어졌고,
아무도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누군가의 뒷모습처럼 늘 거기 있었고,
계절이 바뀌면 그대로 말라갔다.
그 마른 소똥 아래엔 작은 생명이 살았다.
소똥구리.
어린 나는 그 벌레의 이름조차 몰랐지만,
똥 위를 성실하게 걷거나, 그 밑을 파고든 곤충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녀석들은 소똥을 굴리지 않았다.
대신 소똥 아래에 작은 구멍을 파서 집을 지었다.
따뜻하고 축축한, 햇살 냄새 배인 똥지붕 아래,
소똥구리는 그렇게 하루를 살아냈다.
나는 그게 늘 신기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말라붙은 소똥을 뒤집고,
그 안의 작은 구멍에 주전자 물을 부었다.
그러면 잠시 후, 숨 막힌 듯 소똥구리가 꿈틀대며 고개를 내밀었다.
코뿔소처럼 뿔이 달린 놈은 특히 인기가 많았다.
우리는 그것을 손에 쥐고는, 잠시 놀다가 다시 똥 옆에 내려놓았다.
장난이었지만, 그땐 자연이 우리의 놀이터였고, 벌레도 친구였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시절엔 누구도 자연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연은 늘 곁에 있었고,
사람은 그 안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래서였을까.
소똥구리는 말없이 우리 곁을 내어주었고,
우리는 그 곁에서 크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흙길은 아스팔트로 덮였고,
소는 길에서 사라졌다.
비닐하우스와 축사가 들어서고, 들판은 울타리로 나뉘었다.
소똥도, 소똥구리도, 그렇게 하나씩 사라졌다.
‘멸종위기’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작은 곤충을 떠올렸다.
어쩌면 우리 어린 시절의 풍경 전체가
멸종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희망의 소식이 들려온다.
몇몇 지역에서는 소똥구리를 다시 풀어놓고,
자연 목장을 복원하고 있다고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그들의 삶터를 다시 지어주는 일은 가능하다.
소똥 위에 지어진 그 단순하고 조용한 집들이,
다시 흙 속에서 숨 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지붕이 되어줘야 할 때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붕 아래 우리도 함께 머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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