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르라미 울음,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소리가 남는다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소리가 남는다

 

산그늘이 어깨를 낮추면 숲은 마지막 열기를 쏟아낸다.

쓰르람, 쓰르람.

쓰르라미 울음이 공중에 가느다란 금을 긋는다. 한여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다. 여름이 물러설 때가 되어서야 이상하리만큼 또렷해진다.

마당 수도꼭지 아래에는 낮의 물이 남아 있다.

빨랫줄의 셔츠는 아직 덜 말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부풀었다가 천천히 꺼진다. 누군가 잠시 머물렀다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셔츠를 걷다가 주머니에서 네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펴보니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언제 넣어두었는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대신 오래전 여름밤 하나가 떠올랐다.

버스 정류장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가로등 아래로 날벌레가 맴돌았고 자판기에서는 낮은 진동이 흘러나왔다.

막차가 올 때까지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인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때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이었는지, 가지 말라는 말이었는지, 내일도 만나자는 말이었는지.

말은 잊었는데 침묵은 남았다.

사람은 했던 말보다 하지 못한 말의 순간을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얼굴은 희미하다. 목소리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얼굴을 스치던 뜨거운 바람은 아직 기억난다.

기억은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보관한다.

이름을 지우고 사소한 것을 남긴다. 얼굴은 가져가면서 바람을 남기고, 말은 지우면서 침묵을 남긴다.

쓰르람, 쓰르람.

쓰르라미가 다시 울었다.

나는 빈 종이를 처음처럼 네 번 접어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버려야 할 까닭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녁이 내려왔다.

낮 동안 뜨거웠던 담벼락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벌써 어둠이 고여 있었다.

멀리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는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세상은 어떤 이별도 모르는 것처럼 밥을 먹고 불을 켰다.

한때는 그것이 서운했다.

지금은 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루가 이어지는 것이 때로는 가장 조용한 위로가 된다는 것을.

쓰르라미 한 마리가 유난히 오래 울었다.

소리를 따라 바라본 마당 끝 나무에는 가지 하나가 잘려 나간 자리가 있었다. 나무껍질이 그 자리를 둥글게 감싸며 자라고 있었다.

상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오래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기에는 자국이 선명했다.

나무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잘린 자리의 가장자리에서 다시 자라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쓰르람.

이번에는 한 번만 들렸다.

해가 산 너머로 내려가자 마당의 사물들이 차례로 색을 잃었다.

나는 마지막 셔츠를 걷고 바닥에 떨어진 빨래집게 하나를 주웠다.

그 순간 주머니 속 네 번 접힌 종이가 손등에 닿았다.

종이는 꺼내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창밖에서는 쓰르라미 울음이 조금 더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조용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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