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천동 샌님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간다. 몸은 아파트에 머물지만 마음은 늘 논둑과 밭둑을 기웃거린다. 그렇다고 도시를 떠날 용기는 없다.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배달이 늦으면 먼저 초조해지는 묘한 동물이다.
샌님은 술을 즐기지 않지만 술자리의 분위기는 좋아한다. 가족과 알콩달콩 사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예수처럼 오래 참지도 못하고, 부처처럼 훌훌 내려놓지도 못한다. 공자처럼 예를 다하려다 혼자 상처받는 날도 있다. 그래서 삶은 자주 무겁고, 자신은 늘 조금 부족해 보인다.
답답한 날이면 베란다 문을 연다. 그 앞에 소래산이 있다. 산은 도시 한복판에서도 시골의 표정을 잃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산을 바라보다 보면 신발 끈을 묻게 된다. 걷는 동안 마음도 제 숨을 되찾았던 시간을 떠올리며 샌님은 산을 향해 걷는다.
오르막은 처음부터 친절하지 않다. 숨은 거칠어지고 다리는 제 나이를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산길은 사람을 무작정 몰아붙이지 않는다. 힘들 만하면 평지를 내주고, 이제 살 것 같으면 다시 경사를 내민다. 삶과 닮았지만 산은 적어도 미리 길을 보여 준다.
아이도 오르고, 노인도 오른다. 말 못 할 상처를 품은 사람도 산에 올라 숨을 고른다. 산은 사연을 묻지 않는다. 잘했느냐고 따지지도 않는다.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보다 조용한 위로인지 모른다. 산은 그 일을 말없이 해낸다.
샌님은 들숨으로 숲의 냄새를 마시고 날숨으로 마음의 찌꺼기를 내보낸다. 매미는 목청을 높이고 새들은 제멋대로 지저귄다. 계곡물까지 끼어드니 산속은 조용한 듯 꽤 요란하다. 버섯은 악보가 되고, 바위는 북이 되고, 나무는 현악기가 된다. 샌님은 청중도 없는 숲의 지휘자가 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네. 지금은 조금 느려도 괜찮다네.”
그 말을 혼잣말처럼 흘리고 나면 걸음이 가벼워진다. 8부 능선을 넘으며 문득 눈물이 난다. 억울해서도 불행해서도 아니다. 살아온 날들이 한꺼번에 숨을 내쉬는 것 같다. 사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산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정상에 서면 바람이 땀을 닦아 준다. 아래에는 욕망 많은 도시가 펼쳐지고 위에는 갈 곳을 정하지 않은 구름이 흐른다. 산꼭대기의 나무는 작다. 더 높아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산 아래 나무는 햇빛을 찾아 길게 자란다. 높고 낮음은 우열이 아니라 각자가 살아낸 자리의 모양이다.
오른 사람은 반드시 내려가야 한다. 멀리 오른 사람일수록 돌아갈 길도 길다. 산은 성공보다 귀환을 먼저 가르친다. 샌님이 원했던 것도 거창한 정상은 아니었다. 가족과 밥을 먹고, 맡은 일을 견디고, 저녁이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삶이었다. 큰 꿈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은 그렇게 조용한 하루들로 이루어진다.
산을 내려오는 샌님의 발걸음은 올라갈 때보다 느리다. 마음은 오히려 가볍다. 소유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 삶이라면, 가끔은 내려놓는 시늉이라도 해볼 일이다. 오늘도 소래산은 그 자리에 있다. 당신에게도 말없이 숨을 받아 주는 산 하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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