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의 온기,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오래 남는 이유

빈손의 온기

 

해 질 녘 동네 어귀를 지나다 보면 어디선가 구수한 밥 짓는 냄새가 퍼져오곤 했다.

저녁 어스름이 골목에 내려앉을 즈음, 굴뚝이나 환풍구 너머로 흘러나오던 그 냄새는 어린 나를 까닭도 모른 채 서성이게 했다. 함께 놀던 아이들은 하나둘 엄마의 부름을 받고 집으로 들어갔다. 대문 너머에서는 따뜻한 찌개 냄새가 났고, 그릇 부딪는 소리가 달그락거렸다.

그때 내 손은 늘 차가웠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유리구슬 몇 개만이 손바닥에 작은 온기를 보태고 있었다.

타인의 안온한 저녁은 어린 내게 하나의 풍경이었다.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는 것. 문밖에서 오래 바라보아야 했던 아늑함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 뒤편에는 오래된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 주인이 떠난 빈집이었다. 담장 너머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주황빛 감들이 하나둘 익어갔다. 그중 가장 높은 가지 끝에는 감 하나가 오래 남아 있었다. 겨울이 가까워져도 까치가 쪼아 먹지 않은 까치밥이었다.

나는 그 감이 몹시 갖고 싶었다.

마당에 굴러다니던 굵은 대나무 막대기를 가져와 담장에 바짝 붙어 섰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었다. 막대기 끝이 감에 닿을 듯 말 듯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발뒤꿈치는 자꾸 공중으로 들렸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끝내 그 감은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거센 찬바람이 불었다. 다음 날 찾아가 보니 감은 땅에 떨어져 터져 있었다. 나는 깨진 홍시를 한참 바라보다 돌아섰다.

이상한 일이다.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은 내가 따서 먹었던 달콤한 감이 아니다. 끝내 갖지 못했던 바로 그 감이다.

까치발을 들고 대나무 막대기를 뻗던 순간, 손끝을 스쳐가던 서늘한 가을 공기와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주황빛 열매가 오히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질 수 없는 것은 때때로 소유한 것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손에 넣은 것은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지만, 끝내 닿지 못한 것은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손끝과 열매 사이에 남아 있던 그 작은 거리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감나무 끝에 매달린 열매처럼, 내 청춘에도 끝내 내 사람이 될 수 없었던 한 여인이 있었다.

문학 모임의 뒷자리에서 수줍게 찻잔을 거두던 그녀의 하얀 손목과 비 오는 날 우산 아래에서 스치듯 마주쳤던 눈빛을 나는 오래 기억했다.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를 생각하며 시도 썼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내 현실은 가난했고, 그녀가 품은 세계는 내가 다가가기에는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라보기만 했다.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내 건네지 못한 말 하나를 가슴에 묻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내가 그토록 오래 간직했던 것은 어쩌면 그녀 자신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오래 품고 살아온 것은 끝내 건네지 못했던 나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말하지 못한 한마디는 세월 속에서도 쉽게 닳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한 줄의 시가 되었고, 또 어떤 날에는 한 편의 글이 되었다.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 기억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 오랫동안 조용한 불빛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삶에는 그런 것들이 참 많았다.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 끝내 따지 못한 감 하나, 말하지 못했던 사랑, 붙잡아둘 수 없는 시간.

모두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것은 손에 넣었던 것보다 놓쳐버린 것들인 경우가 많다.

지금 내가 머무는 창밖으로는 소래산 자락이 조용히 누워 있다.

해 질 녘이면 노을이 산등성이를 넘어 서쪽 하늘로 천천히 번진다. 나는 가끔 그 노을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본다.

손가락 사이로 서늘한 저녁 바람이 지나간다. 노을빛은 손바닥을 잠시 물들이는 듯하다가 아무런 무게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저 빛을 방 안으로 가져올 수는 없다. 상자에 담을 수도 없고, 내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노을은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소유할 수 없기에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생각해보면 어린 날 내가 담장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감도 그러했다. 청춘의 어느 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도 그러했다. 지금 창밖으로 사라져가는 노을도 그렇다.

모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끝내 손안에 머물지 않는 것들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잃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잃은 것일까.

손에 넣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끝내 따지 못했던 감은 내게 간절함을 남겼고, 말하지 못했던 사랑은 시를 남겼다. 붙잡을 수 없는 노을은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어쩌면 인간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리워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손을 뻗었으나 끝내 닿지 않았던 그 작은 거리 때문에 우리는 시를 읽는다. 누군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오래된 골목을 떠올리고, 다시 오지 않을 계절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기다린다.

오늘 밤도 창문 너머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나는 가만히 손바닥을 펼쳐본다.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빈손에는 어린 날 골목 끝에서 맡았던 저녁밥 냄새가 남아 있다. 높은 가지의 감을 향해 까치발을 들던 간절함이 있다. 끝내 고백하지 못했던 청춘의 떨림이 있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던 저녁 노을이 있다.

모두 한때는 갖고 싶었으나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바로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빈손이란 어쩌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손이 아니라, 지나온 삶의 보이지 않는 온기를 품은 손인지도 모른다.

삶의 풍요로움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손에 넣었는가만으로 헤아릴 수 없다. 때로는 갖지 못한 것이 우리를 더 오래 꿈꾸게 하고, 닿지 못한 것이 더 오래 기억하게 한다. 이루지 못한 마음 하나가 한 사람의 내면을 깊게 만들기도 한다.

창밖의 마지막 노을이 사라진다.

나는 펼쳤던 손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손에는 아무것도 잡혀 있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그러니 빈손으로 살아온 내 삶도,

그리 가난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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