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여름의 볕이 대지를 하얗게 달구던 오후였다.
개미는 스마트팜 하우스 안에서 허브의 생육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었다.
자동 관수기는 쉬지 않고 돌아갔다. 농업 로봇도 밭고랑을 오갔다. 그래도 막힌 배관을 뚫고 비료를 나르는 일까지 기계가 해주지는 않았다.
이마에서 떨어진 땀이 태블릿 화면에 번졌다.
구석의 스피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영서지방에 상륙할 초강력 태풍으로 대규모 피해가 예상됩니다.”
개미는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태풍의 예상 경로가 마을 한복판을 가르고 있었다.
하우스 밖으로 나오자 참나무 아래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베짱이였다.
베짱이는 홀로그램 캔버스를 펼쳐놓고 생성형 AI와 곡을 만들고 있었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AI가 화음을 붙였다. 손가락을 튕기면 수십 가지 편곡이 허공에 펼쳐졌다.
개미가 물었다.
“태풍 온다는데 준비 안 하냐?”
베짱이는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하고 있잖아.”
“뭘?”
“일.”
개미가 피식 웃었다.
“그게 일이냐?”
베짱이도 웃었다.
“형님 일만 일인 건 아니지.”
개미는 대꾸하지 않았다.
수레에서 비료 자루 하나를 내려 참나무 둥치에 기대놓았다. 창고가 가득 차 잠시 두는 것이었다.
베짱이는 다시 노래를 흥얼거렸다.
개미는 밭으로 내려갔다.
그날 밤 태풍이 왔다.
바람은 하우스 비닐을 종잇장처럼 찢었다. 낙뢰가 메인 서버를 태웠다.
센서가 꺼졌다.
농업 로봇도 멈췄다.
한 해 동안 쌓아온 생육 데이터는 검은 화면 속으로 사라졌다.
아침이 되었을 때 밭에는 흙탕물만 남아 있었다.
개미는 물에 잠긴 허브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해 농사는 끝이었다.
이틀 뒤 마을 방송이 울렸다.
“정부 재난복구 시스템의 피해 산정이 완료됐습니다. 긴급복구 지원금 신청 대상자는 마을회관으로 오십시오.”
개미는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마을 어귀가 떠들썩해졌다.
베짱이 때문이었다.
태풍이 몰아치던 밤, 베짱이가 생성형 AI와 완성해 글로벌 메타버스에 올린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재생 수는 수백만에서 수천만으로, 다시 수억으로 뛰었다.
도시의 전광판마다 베짱이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누군가는 운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AI 시대의 천재라고 했다.
베짱이는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 뒤 그가 개미의 밭으로 찾아왔다.
최신형 복구 드론 한 대를 내려놓았다.
“형님, 이거 써.”
개미는 드론을 바라보았다.
몇 달을 일해도 사기 어려운 기계였다.
“공짜냐?”
“노래 한 곡 잘됐다고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쪼잔해지진 않아.”
베짱이가 웃었다.
돌아서던 그가 문득 멈췄다.
“형님.”
“왜?”
“그때 그랬잖아. 그게 일이냐고.”
개미는 대답하지 못했다.
복구 드론이 진흙 위로 떠올랐다.
그날 밤 개미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평생 성실하게 일했다.
저축했고, 보험을 들었고, 국민연금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런데 태풍 한 번에 한 해의 노동이 사라졌다.
반면 참나무 아래에서 노래하던 베짱이는 며칠 만에 개미가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을 벌었다.
개미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너무 먼 미래만 바라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세월이 흘렀다.
개미는 다시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일하지는 않았다.
농업 로봇과 AI가 할 수 있는 일은 맡겼다. 농사 규모도 조금 줄였다.
대신 아내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 년에 하루였다.
그다음에는 사흘이었다.
나중에는 일주일이 되었다.
베짱이는 더 유명해졌다.
공연은 매진됐고 저작권 수익은 계속 들어왔다.
젊은이들은 말했다.
개미처럼 살 필요가 없는 시대라고.
베짱이도 그렇게 믿었다.
저택을 샀다.
스튜디오를 지었다.
돈을 빌려 더 큰 공연에 투자했다.
내년의 수입으로 올해의 빚을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오랫동안 틀리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도시마다 흐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해, 새로운 초거대 AI가 공개됐다.
그 AI는 음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람의 기억과 취향을 분석해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음악을 실시간으로 만들었다.
첫사랑을 닮은 목소리.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
열일곱 살 여름의 냄새까지 되살리는 리듬.
모두가 같은 노래를 듣던 시대가 끝났다.
베짱이는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AI를 배웠다.
밤을 새워 프롬프트를 연구했다. 새로운 작곡법도 익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AI를 잘 쓰는 사람이 경쟁자가 아니었다.
AI가 음악가였다.
처음에는 공연장이 작아졌다.
다음에는 공연 횟수가 줄었다.
그다음에는 저작권 수익이 줄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베짱이의 신곡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래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빚이었다.
수입은 작아졌지만 화려했던 시절에 만들어놓은 삶의 크기는 쉽게 작아지지 않았다.
저택이 팔렸다.
스튜디오도 팔렸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악기 몇 개가 남았다.
베짱이는 그중 하나만 남겼다.
다시 세월이 흘렀다.
개미도 베짱이도 예순을 넘겼다.
개미에게는 국민연금이 들어왔다.
젊을 때 조금씩 모아둔 노후자금도 있었다.
자동화가 일자리를 대신한 뒤부터 정부가 지급하기 시작한 로봇세 배당도 매달 들어왔다.
풍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내와 가끔 자율주행 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닐 정도는 되었다.
베짱이에게도 같은 로봇세 배당이 들어왔다.
그 돈 덕분에 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로봇이 들어가기 어려운 외딴 농가에서 기계를 고치고 짐을 날랐다.
가끔 작은 마을 축제에서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가 한때 세계적인 가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느 가을 저녁이었다.
일을 마친 베짱이가 참나무 언덕을 올랐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둥치 아래에는 낡은 자루 하나가 흙에 반쯤 묻혀 있었다.
베짱이는 발끝으로 흙을 걷어냈다.
희미한 글씨가 드러났다.
비료.
그는 한참 바라보다 웃었다.
“저 양반도 참.”
수십 년 전 개미가 놓아두었던 자루였다.
베짱이는 먼지를 털고 그 위에 앉았다.
낡은 악기를 꺼냈다.
그리고 오래된 노래를 불렀다.
젊은 날, 바로 이 나무 아래에서 처음 만들었던 곡이었다.
한때 수억 명이 따라 불렀던 노래였다.
그때 언덕 아래로 자율주행 열차 한 대가 지나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던 개미 부부가 그 안에 있었다.
개미는 창밖을 바라보다 참나무 아래의 노인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낡은 악기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베짱이네.”
아내가 창밖을 보았다.
“저분이 그 유명했던 친구예요?”
“응.”
개미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베짱이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열차의 방음 유리는 너무 두꺼웠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흥얼거렸다.
개미의 눈썹이 움직였다.
익숙한 멜로디였다.
참나무 아래 베짱이가 부르는 바로 그 노래였다.
개미가 아이에게 물었다.
“그 노래를 아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유행해요.”
“누가 만든 노래인데?”
아이는 손목 단말기를 열었다.
음악 정보가 허공에 떠올랐다.
개미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가수 이름은 없었다.
작곡가 이름도 없었다.
짧은 문장 하나만 떠 있었다.
‘전통 음악 데이터 기반 AI 재구성곡.’
개미가 말했다.
“이 노래 만든 사람, 따로 있는데.”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이 만들었어요?”
개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차가 참나무 언덕을 지나갔다.
창밖의 베짱이가 점점 작아졌다.
아이는 계속 노래를 흥얼거렸다.
잠시 뒤 개미도 따라 불렀다.
가사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참나무 아래에서 베짱이는 마지막 소절을 끝냈다.
멀어지는 열차를 바라보다 낡은 악기를 등에 멨다.
일어서려다 비료 자루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작은 풀 한 포기가 눌려 있었다.
베짱이는 자루를 옆으로 밀어놓았다.
구부러졌던 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언덕 아래에서는 농업 로봇들이 불을 밝힌 채 밤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베짱이는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멀어지는 열차 안에서 아이가 다시 그의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개미도 함께 불렀다.
베짱이는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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