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봤다

저녁을 먹고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한 방송에서 손이 멈추었다.
세 남자가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길은 없었다. 덤불을 헤치고 골짜기를 건너고, 썩은 고목을 피해 발을 옮겼다. 물 빠진 배낭과 흙투성이 등산화가 그들이 걸어온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심마니의 걸음에는 조급함이 없었다. 앞사람이 지팡이로 풀숲을 헤치면 뒷사람은 그 발자국을 밟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발밑의 흙과 바람 소리에 몸을 맡긴 채 자기 호흡으로 산을 올랐다.
출출하면 바위 그늘에 앉았다. 차가운 주먹밥에 산길에서 뜯은 참나물 몇 잎을 얹었다. 그뿐이었다. 식탁도 반찬도 없었지만 한 끼는 충분해 보였다.
해가 기울면 나무 사이에 비닐 한 장을 둘렀다. 그것이 그날 밤의 집이었다.
물론 산속의 삶이 화면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비가 들이치고, 짐승 울음에 잠을 깨고, 며칠을 헤매고도 빈손으로 내려오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앞서가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끼 사이로 손바닥처럼 펼쳐진 잎이 보였다.
세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심봤다!”
목소리가 산속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다가 문득 학교를 떠올렸다.
평생 시간표 안에서 살았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했고 종이 울리면 교실에 들어갔다. 수업을 마치면 다음 교실로 향했다. 한 장의 시간표가 하루를 나누었고, 달력은 그렇게 한 해씩 넘어갔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 혼자 칠판을 지우던 날이 많았다.
지우개를 밀 때마다 하얀 분필 가루가 햇빛 속으로 흩어졌다.
창문 너머에는 산이 있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오래 바라보지는 못했다.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해야 했고 책상 위에는 채점할 시험지가 남아 있었다.
산은 그대로였고 나는 바빴다.
그렇게 서른 해가 넘게 흘렀다.
달력은 내가 넘기는 줄 알았다.
돌이켜보니 달력이 나를 넘기고 있었다.
교실을 떠난 뒤 가끔 내 손을 들여다본다.
예전에는 손가락 마디마다 분필 가루가 끼어 있었다. 털어도 소매에 묻고 바지에 묻어 퇴근길까지 따라왔다.
평생 내 손끝에는 흙보다 분필 가루가 많이 묻었다.
그 세월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가루 속에서 아이들이 자랐고 나도 함께 늙었다. 그것은 내가 걸어온 길이었다.
다만 이제는 다른 것이 조금 묻어도 좋겠다.
흙도 좋고 풀물도 좋다.
이름 모를 들꽃의 꽃가루라면 더 좋겠다.
화면 속 심마니가 산삼 주변의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고 있었다. 손톱 밑까지 검은 흙이 박혀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손을 바라보았다.
산삼이 부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로 갈지 제 발로 정했고, 언제 멈출지 제 몸에게 물었다. 남이 정해놓은 속도가 아니라 자기 호흡으로 걸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도 어쩌면 그런 걸음인지 모른다.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 길.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산.
그 정도면 충분하다.
방송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갔다.
거실 불을 끄자 창밖의 어둠이 유리창에 내려앉았다.
나는 현관으로 갔다.
신발장 구석에 밀어두었던 등산화를 꺼냈다. 먼지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손바닥으로 툭툭 털었다.
그리고 오래 묶지 않았던 끈을 당겨보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등산화를 신고 동네 뒷산으로 향했다.
정상을 정해두지는 않았다.
한참을 걷다가 길가에 작은 풀꽃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름도 모르는 꽃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았다.
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손을 땅에 짚고 일어서는데 손바닥에 흙이 조금 묻었다.
털지 않았다.
산길을 다시 걸으며 손바닥을 한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혼자 웃었다.
“심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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