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이면 통장에 찍힌 숫자를 바라보며 습관처럼 같은 말을 되뇌곤 했다.
“이건 땀의 대가만은 아니다. 견뎌낸 스트레스의 대가다.”
삼십 년이 넘도록 같은 날짜에 들어오던 월급은 노동의 보상이면서, 사람을 견뎌낸 시간에 대한 위로금이기도 했다.
∞
공립학교 교사는 몇 년마다 학교를 옮긴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는 다르다.
처음 발을 들인 교정에서 청춘을 보내고, 그 자리에서 늙어가는 경우가 많다.
눈을 뜨면 늘 같은 얼굴을 만난다.
좋든 싫든, 피할 곳은 없다.
∞
쉬는 시간의 교무실은 언제나 조용했다.
차를 나누며 웃고, 서로의 경조사를 챙긴다.
겉으로는 평온한 공동체다.
하지만 그 평온 아래에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들만이 아는 긴장이 흐른다.
누구의 말이 상처가 되는지,
누구의 자존심이 어디에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고,
때로는 더 많이 참게 된다.
∞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관계를 끊을 수도 없다.
등을 돌릴 수도 없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참는 것이다.
모서리가 닳을 만큼.
시간이 깎아낼 만큼.
∞
퇴근 후 산길을 걷던 이유도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업은 나를 지치게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오히려 힘이 되었다.
정말 피곤했던 것은 사람 사이에서 생긴 감정의 잔해였다.
교무실에서,
회의실에서,
연수장에서.
하루 종일 부딪히며 쌓인 마음속 앙금을 바람에 흘려보내기 위해 산을 올랐다.
∞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다.
사람 대신 AI를 장착한 로봇 교사들이 교무실을 채운다면 어떨까.
그곳에는 불필요한 감정도,
자존심도,
눈치도 없을 것이다.
전류는 흐르지만 감정은 흐르지 않는다.
상처받을 일도 없고,
미안할 일도 없다.
승진을 두고 신경전을 벌일 이유도 없다.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를 쓰고,
맡은 일만 정확하게 끝낼 것이다.
어쩌면 가장 효율적인 조직일지 모른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풍경을 오래 상상하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갈등이 없는 조직은
온기도 없는 조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로봇은 동료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
하지만 지친 동료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이는 손길도 없다.
실수를 감싸주는 미소도,
함께 웃다가 눈시울을 붉히는 순간도 없다.
∞
돌이켜보면,
우리가 끝내 서로를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미운 정과 고운 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
사람은 서로의 모서리에 긁히며 살아간다.
그래서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 상처 덕분에 조금씩 둥글어진다.
조금씩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
로봇은 모서리가 닳지 않는다.
그래서 상처도 없다.
하지만 서로를 품으며 변해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
문득 깨닫는다.
월급은 노동의 대가만이 아니다.
사람 곁에서 사람을 견뎌낸 시간의 대가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말하지 못한 인내,
드러나지 않는 감정 노동.
그 모든 시간이 월급이라는 숫자 속에 조용히 스며 있다.
∞
AI 시대가 올수록 효율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많은 일은 기계가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상처를 이해하는 일.
누군가를 기다려 주는 일.
그리고 함께 견뎌내는 일이다.
∞
마찰은 불편하다.
그러나 마찰이 있기에 우리는 성장한다.
상처가 있기에 공감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은,
서로의 모서리에 조금씩 닳아가며
비로소 사람다운 온기를 배워간다.
그래서 오늘도 문득 생각한다.
우리가 받은 월급에는, 노동의 시간뿐 아니라 사람을 견뎌낸 시간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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