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주방에 남은 열과 침묵을 그린 현대시

프라이팬

 

불은 언제나 바닥부터 익힌다.
프라이팬은 말이 없다.
먼저 뜨거워지고,
나중에 식는다.

기름 한 방울이 둥글게 번진다.
생선 한 토막이 내려앉는다.
지글거리는 것은 살인지,
오래 남아 있던 기억인지 끝내 구별되지 않는다.

프라이팬은 긁힐수록 빛을 잃는다.
대신 마늘 냄새와 생선 비린내,
국물의 김을 겹겹이 품는다.
이름을 잃은 저녁도 그 안에서 함께 눌어붙는다.

주방은 매일 같은 불을 켠다.
식탁은 매일 다른 허기를 맞는다.
의자는 사람보다 오래 남아
빈자리를 조용히 지킨다.

찬물은 달아오른 쇠를 오래 두드린다.
짧은 울림 하나.
쇠의 소리인지, 물의 소리인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불은 꺼졌는데 열은 남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나 조금 더 오래 식지 않는다.

벽에 걸린 검은 원 하나.
달처럼 보여도 프라이팬일 수 있고,
프라이팬처럼 보여도 오늘 하루일 수 있다.
아무도 그 둥근 바닥의 이름을 다시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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