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에 난 구멍, 술과 담배로 버티던 삶의 한때

 

그해 겨울, 교무실 내 서랍 아래 칸에는 뜯지 않은 믹스커피 상자가 늘 쌓여 있었다.

마흔의 한복판이었다. 내 하루는 노란 봉지를 찢는 소리로 시작해 퇴근길 차창 밖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로 끝났다.

삶의 톱니바퀴가 한꺼번에 어긋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를 간암으로 여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영정 속 어머니의 눈빛이 아직 선명했지만,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아침이면 칠판 앞에 서야 했다.

집에 돌아가도 마음 둘 곳은 마땅치 않았다. 병석에 누운 아내의 방에서는 간간이 기침 소리가 들렸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건넨 몇 마디 말도 자주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학교 역시 숨 쉴 곳은 아니었다.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던 중책이 내 몫이 되었고, 동료들과의 관계도 서먹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옷에 묻은 분필 가루를 털 때면 나도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마음까지 깊이 가라앉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가 먼저 가슴 위에 올라앉았다.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교사였고,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다.

학교에 가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교실 문을 열었다.

그 무렵 내가 숨어들던 곳은 학교 건물 뒤편의 자재 창고였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종이컵에 믹스커피 두 봉지를 털어 넣었다. 뜨겁고 단 커피를 삼키고 곧바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대가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대.

다음 수업 종이 울리면 반쯤 탄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교실로 뛰어갔다.

하루에 믹스커피 열다섯 잔이 넘어갔다. 담배는 두 갑씩 사라졌다. 속은 쓰렸고 머리는 멍했다.

그래도 창고 구석에서 연기를 내뿜던 그 몇 분 동안은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퇴근길에도 담배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 끝은 누렇게 물들었고 옷에는 오래된 니코틴 냄새가 배었다. 금연 패치를 붙이고 남은 담배를 변기에 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며칠 뒤면 다시 편의점 앞에 차를 세웠다.

어느 비 오던 밤이었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 불씨 하나가 와이셔츠 가슴께로 떨어졌다.

치직.

탄내가 올라왔다.

황급히 손으로 털었지만 늦었다. 흰 와이셔츠에 굵은 콩알만 한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비상점멸등이 어둠 속에서 깜박였고 빗방울은 쉴 새 없이 차창을 두드렸다.

손가락으로 구멍을 만져보았다.

그 사이로 서늘한 살갗이 닿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도 저런 구멍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타들어 가다가, 어느 날 문득 손끝에 잡히는 구멍.

그날도 집에 돌아와 소주병을 열었다.

담배와 믹스커피로 낮을 버텼다면 밤에는 술로 생각을 눌렀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취기가 오르면 하루가 조금 멀어졌다.

그렇게 하루를 넘겼다.

그리고 또 하루를 넘겼다.

남들이 보면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의 나쁜 습관이었을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술과 담배, 지나친 커피는 내 몸을 갉아먹었다.

나도 수없이 끊으려 했다.

그러나 끊어야 할 이유보다 붙잡아야 할 이유가 더 컸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은 좋아서 붙잡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붙잡는 것도 있다.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집 안에도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고, 학교에서 나를 짓누르던 일들도 하나둘 지나갔다.

오래 가라앉아 있던 마음에도 볕이 들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토록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던 담배가 손에서 떨어졌다. 술도 멀어졌다. 하루 열다섯 잔씩 마시던 믹스커피도 더는 찾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참은 것도 아니었다.

살 만해지자 비로소 손을 펼 수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놓지 못했던 것은 담배와 술과 커피가 아니라, 어쩌면 그 하루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옷장을 정리하다 그 와이셔츠를 발견한다.

버려도 진작 버렸어야 할 낡은 옷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직 옷장 한쪽에 걸려 있다.

가슴께에는 그날 생긴 작은 구멍도 그대로다.

손끝으로 그 자리를 짚으면 학교 뒤편 자재 창고의 서늘한 공기가 돌아온다. 뜨거운 종이컵, 매캐한 담배 연기, 비 내리던 밤의 차창도 떠오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또 일어나 칠판 앞에 섰던 마흔의 내가 보인다.

나는 한동안 그 구멍에 손가락을 대고 서 있다.

그러다 손을 뗀다.

와이셔츠를 다시 옷걸이에 걸어두고,

옷장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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