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샘처럼 써야 솟는다: 글쓰기 습관이 아이디어를 만드는 힘

어린 시절 우리 마을 한가운데에는 작은 샘터가 있었다. 고요한 흙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돌담 옆에 앉은 샘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은 맑고 차가웠고, 늘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몇몇 집은 우물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샘터에 의지해 살았다. 그곳은 단순한 물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었다.

아침이면 어머니들은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빨랫감을 들고 나왔다. 물에 손을 담그면 ‘첨벙’ 소리가 맑게 튀었고, 비누 향과 함께 웃음소리가 번졌다. 어린 나는 어른들의 대화에 낄 수는 없었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뭔가 신비롭고 들뜬 기분이 들었다. 샘터 근처를 맴돌며 친구들과 돌을 튕기고, 발을 담그며 장난을 쳤다. 물이 솟아나는 그곳은 마치 마을의 심장 같았다. 고요하지만 살아 있었고, 말이 없지만 생명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물었다. 왜 이 물은 줄지 않느냐고.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많이 퍼쓸수록 더 솟는단다.” 그 말이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물은 정말 그렇게 보였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도 샘은 마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샘을 믿었고, 샘도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은 샘터에도 무심했다. 마을이 도시화되고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어졌다. 빨래는 세탁기로 옮겨졌고, 샘터는 잡초 속에 묻혔다. 그 오랜 시간 물이 흘렀던 자리엔 정적만이 남았다. 누구도 찾지 않는 샘은 언젠가부터 물을 멈추었다.

나는 요즘 그 샘을 자주 떠올린다. 9개월 전부터 블로그에 수필을 써오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글감이 제법 많았다. 읽었던 책들, 길에서 스친 풍경, 문득 떠오른 기억들. 하루 한 편, 짧은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을 먹고, 매일 글을 올렸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고요하고, 외로운 일이다. 처음엔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고, 이내 글감이 고갈될까 봐 걱정이 앞섰다. 창작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조차 몰랐다. ‘나는 정말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글을 쓸수록,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늘 쓴 글이 내일의 글을 데려오고, 글의 마지막 문장이 다음 글의 첫 문장이 되기도 했다. 한 줄을 쓰면 생각이 이어졌고, 그 생각은 다시 글감을 불러왔다. 샘처럼, 글도 쓰면 솟았다.

물론 모든 날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날엔, 글이 두려운 적도 있다. 스스로에게 실망한 날, 문장을 수십 번 고쳤다가 지워버리기도 했다. 어떤 글은 아예 빛도 못 보고 사라졌고, 어떤 글은 나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책상 앞에 앉았다. 내 안의 샘이 마르지 않았기를 바라며, 조용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릴 적 어머니가 비 오는 날에도 샘터에 나가던 모습처럼, 나는 빈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의 문장을 길어올렸다. 샘이 그랬듯, 글도 꾸준히 퍼올릴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동시에 세상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블로그라는 공간은 단순한 공개 일기가 아니다. 매일의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과 연결되며, 때로는 내면을 바라보는 창이 된다. 그렇게 쌓인 글들은 때로 남의 마음을 두드리고, 때로는 나를 치유한다.

어쩌면 글은 정원과도 같다. 매일 물을 주고, 가지를 다듬어야 꽃이 피고 향기가 나는 법이다. 글쓰기 습관이란 그런 것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기 어떤 생각이 자라고 있는지, 어떤 감정이 고요히 움트고 있는지를.

나는 오늘도 그 샘터로 간다. 마을에 있던 그 샘은 사라졌지만, 내 안의 샘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곳은 여전히 퍼올릴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손을 대야 비로소 흐른다. 맑고 찬물처럼, 글은 멈춰 있지 않는다. 우리가 믿고 다가가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퍼올리기 전에는 아무것도 솟지 않는다. 첫 문장을 적는 순간, 당신 안의 샘도 조금씩 깨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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