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만나는 일

— 한밤중 노트북 앞에서 써내려간 사유의 기록

가끔 그런 밤이 있다. 쓴 것도 없는데 머리가 아프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목이 마르다. 책상 위엔 노트북, 찻잔 하나, 그리고 지워진 문장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또다시 글을 쓰지 못한 채 앉아 있다.

글은 내 안의 낯선 손님이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벌써 와 있다. 방 안을 어지럽히고, 조용한 밤을 들쑤시고, 생각을 엉망으로 흩뜨려 놓는다. 그렇다고 그를 내쫓을 수도 없다. 어느새 나는 그와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괴롭히지만, 없으면 허전하다. 글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 너 자신을 외면하느냐고.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말하지 않은 것들, 외면한 감정, 애써 눌러온 기억들이 문장으로 새어나온다. 그 순간의 불편함, 그 아찔한 솔직함을 견디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주 도망친다. 잘 써야 한다는 말은 자주 핑계가 된다.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완벽주의 뒤에 숨어버린다. 사실 나는 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두려운 것이다.

한 번은 몇 천 자를 써놓고 모조리 지운 적이 있다. 단 한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벽한 문장을 찾아 새벽까지 붙잡고 있었지만, 끝내 남은 건 침묵뿐이었다. 그때 알았다. 완벽한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나를 가장 닮은 문장이 가장 서툰 문장이었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조금 다르게 쓰기로 했다. 잘 쓰려 하지 않고, 진짜를 쓰려고 했다. 누군가에게 멋져 보이기보다, 나에게 정직한 문장을 택했다. 그러자 글이 달라졌다. 문장에 체온이 돌았고, 쉼표 하나에도 숨결이 묻어났다. 글은 과시가 아니라 고백이 되었다.

글이란 결국, 쓴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출판되지 않아도, 글을 쓴다는 건 이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치유이자, 저항이며,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지금, 여기에서 나는 존재하고 있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말로 하지 못한 것들을 글로 눌러 담는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알고 있다. 이 글이 나를 만든다는 것을. 내가 쓴 문장이 결국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다시 걷게 만든다는 것을.

글은 언제나 조금 부족하다. 다 쓰고 나면 늘 아쉽고, 때로는 부끄럽고, 자주 실망스럽다. 그런데도 나는 또 쓴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과정 자체가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글을 쓰는 인간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인간다운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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