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오면 마음이 먼저 간질거린다.
손끝이 아니라, 가슴 속이.
낙엽을 밟는다.
바스락, 소리 하나에 발걸음이 멈춘다.
혼자인데도 누군가와 함께 걷는 듯하다.
외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설렌다.
스쳐 간 연애도, 길가의 커플도
모두 내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가을은 추억을 불러내되
상처로 만들지 않는다.
그저 삶을 조금 더 다정하게 물들인다.
그러다 문득, 꿈꾼다.
초가집에 단풍나무.
닭을 키우고, 고추를 말리고,
저녁이면 국화차를 들고 앉는 삶.
하지만 현실은 아파트.
베란다, 전기주전자, 믹스커피 한 잔.
그럼에도, 따뜻하다.
그 소박함이 오늘을 버티게 한다.
가을은 시작도, 끝도 아니다.
사이의 계절.
흔들리는 마음은 그 틈에서 제 얼굴을 드러낸다.
나는 그 불완전함이 좋다.
너무 선명하지 않아서.
흐릿한 여백 속에서
삶은 오히려 깊어진다.
낙엽 위를 걷는다.
문득 알게 된다.
가을의 간지러움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관련글 보기
♤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산업 사회에서 오직 생존하고 경쟁의 승리를 위해서 기계 부속처럼 일을하며 시멘트 빌딩 숲에서 전기 주전자로 물을 끓여 믹스커피나 마시며 하루를 느낌없이 마감하며, 계절의 흐름을 잊고 살아가던 현대인들에게도 가을이 주는 서정은 크지 싶군요. 시인 선생님도 가을을 많이 타나 보네요. 한 해 살이를 역할을 모두 잘 마치고 이제는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바스락 밟고 길을 가노라면 생의 아픔마저도 추억이 되어 더는 상처를 만들지 않는 수많은 한 해 살이들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걷는 느낌이 들고, 초가집, 닭, 고추, 국화차같은 땅에서 익어 향기나는 삶을 배워 보고도 싶은 것을 보면. 사계절 중 극서와 극한의 어드메쯤인 가을, 짧아 불안정하지만 자연이 본연의 서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시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간지러움이 시인을 생기로 채우는 시간.
참 좋네요.
울림님이 보내주신 글귀 중 “가을은 추억을 불러내되 상처로 만들지 않는다”는 구절이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는 사계절 내내 각자의 전장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마음의 생채기를 돌볼 겨를이 없지요. 하지만 가을은 그 날카로웠던 아픔들을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부드러운 질감으로 바꿔주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