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통장에 찍히지만, 사람은 휴일에 살아난다

월급쟁이의 휴일

 

휴일에는 알람보다 침묵이 먼저 나를 깨운다.

눈을 떴지만 한동안 일어나지 않는다.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숨을 고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시계가 나를 끌고 갔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시간이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누워 있는 것. 그것이 휴일이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정리하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삼십 년이 훌쩍 넘도록 함께한 검은 구두 한 켤레.

뒤축은 유난히 한쪽만 닳아 있다.

처음에는 구두가 닳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오래 바라보고 있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닳은 것은 구두가 아니라, 그 구두를 신고 버텨온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는.

나는 사립학교에서 서른두 해를 교사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은 교사는 방학이 있어 편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한다고 이해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수업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학부모의 마음을 달래고, 동료와 협력하며, 수없이 많은 갈등을 조용히 품어야 하는 사람이다. 하루가 끝나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퇴근한 뒤에도 학생의 얼굴 하나가 마음에 남고, 교무실에서 미처 삼키지 못한 말 한마디가 밤늦도록 가슴을 맴돈다.

몸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마음은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날이 많았다.

월요일 아침이면 교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하루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교무실 문을 여는 순간 들리는 인사 소리.

컴퓨터가 켜지는 소리.

프린터가 종이를 뱉어내는 소리.

그 평범한 소리들 사이에는 말로 드러나지 않는 긴장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학교도 결국 사람이 모인 사회였다.

칭찬은 짧았고 오해는 오래갔다.

격려는 조용했지만 비교는 쉽게 들렸다.

누군가는 승진을 준비했고, 누군가는 자리를 지켰으며, 누군가는 상처를 감춘 채 하루를 버텼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에게는 늘 따뜻한 교사이고 싶었다.

그래서 억울한 날에도 웃었고, 속상한 날에도 교단에 섰다. 감정은 퇴근할 때 벗어두는 외투가 아니었다. 마음속 깊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피로가 되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닳는다는 것을.

월급은 한 달에 한 번 통장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것을 노동의 대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 월급은 조금 달랐다.

참았던 말의 값이었다.

삼켜야 했던 감정의 값이었다.

학생들 앞에서는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시간의 값이었다.

그래서 휴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었다.

휴일은 닳아버린 마음을 다시 세우는 날이었다.

늦은 아침 커피를 내린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먼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화분 끝에 새순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전깃줄에 앉았다가 금세 하늘로 날아오른다.

평일에도 늘 있었던 풍경이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바쁘게 살아갈수록 사람은 풍경보다 목적지를 먼저 본다.

성공을 향해 뛰느라 계절을 놓치고, 성과를 좇느라 사람을 놓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조차 흐려진다.

휴일은 그 잃어버린 질문을 다시 꺼내는 시간이다.

오후가 되자 창밖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커튼을 젖히니 아파트 공터에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서 있었다.

골대도 없고 심판도 없었다.

축구공 하나뿐이었다.

아버지가 가볍게 밀어준 공을 아이가 힘껏 찼다.

텅.

공은 옹벽에 부딪혀 둔탁한 울림을 남겼다.

잠시 후 다시.

텅.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오래전 학교 운동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었다. 넘어져도 금세 일어났고, 다퉈도 금세 화해했다. 시험 점수도, 입시도, 경쟁도 그 짧은 시간만큼은 아이들의 웃음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국어 교과서의 문장만이었을까.

아니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 함께 웃는 법,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법을 나 역시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공은 계속 오갔다.

텅.

텅.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소리가 오래된 마음의 먼지를 하나씩 털어냈다.

그제야 알았다.

휴일은 일을 멈추는 날이 아니라, 사람을 회복하는 날이라는 것을.

쉼은 게으름이 아니다.

다시 걸어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해가 천천히 기울었다.

내일이면 또 월요일이다.

누군가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졸음을 참을 것이고, 누군가는 교실 문을 열 것이며, 누군가는 익숙한 사무실 의자에 다시 앉을 것이다.

삶은 또 시작된다.

나는 현관에 놓인 구두를 다시 바라본다.

닳은 뒤축은 이제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성실하게 걸어온 시간의 훈장이다.

창밖에서는 마지막 공 소리가 들려왔다.

텅.

그 울림은 금세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월급만으로 한 주를 살아내지 않는다.

사람을 끝내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휴일 오후의 바람 한 줄기일 수도 있고,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일 수도 있으며, 뒤축이 닳도록 걸어온 자신의 시간을 조용히 쓰다듬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일이 월요일이어도 괜찮다.

오늘 나는 쉬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관련글 보기

수건, 남을 닦아주며 자신은 젖어가는 존재

폭염 그늘막이 바꾼 도시의 일상, 작은 공공서비스가 만드는 행정 신뢰

비워야 채워지는 시간: 감정은 왜 사실이 아니라 해석에서 시작될까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선비천사 브런치 바로가기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