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서재의 중심을 차지하던 육중한 책장들이 언제부턴가 조금씩 뒤로 물러앉기 시작했다.
30년 넘게 매일 마주하던 분필 가루가 허공으로 사라지듯, 내 시력의 중심도 서서히 안개 속으로 번져갔다.
노안이라는 불청객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책 속 활자들을 자꾸만 짓뭉개 놓았다. 젊은 시절,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페이지를 넘기던 그 팽팽한 독서의 희열은 돋보기안경의 두꺼운 렌즈를 통과하며 산산이 흩어졌다.
책장을 펼치면 글자들이 개미 떼처럼 엉겨 붙었다.
눈이 먼저 지쳐버렸다.
처음에는 꽤 서글펐다.
활자의 바다에서 길을 잃어버린 늙은 병사처럼, 나는 책으로 둘러싸인 방 안을 한동안 괜히 서성거렸다. 평생 책을 읽고, 가르치고, 문장 속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텍스트의 상실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다. 세상과의 연결이 조금씩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책장 속 문장들은 여전히 고결했다.
다만 내 눈이 더 이상 그 고결함을 오래 감당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게 종이책의 시대가 조금씩 멀어질 무렵,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이 내게 새로운 창이 되었다.
그리고 그 창의 가장 아래쪽.
뉴스와 글 끝에 매달린 댓글의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그저 심심풀이 정도로 내려다본 골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거기에는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체온이 있었다. 누군가가 사건 하나를 던지면 수백 명의 사람이 각자의 삶을 들고 달려와 짧은 문장 안에 자기 경험과 감정, 분노와 통찰을 욱여넣고 있었다.
책이 저자에서 독자로 흘러가는 고요한 강물이라면, 댓글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사방으로 파도가 튀는 바다 같았다.
나는 스마트폰 글자를 최대한 키워놓고 그 기묘한 광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정치인의 긴 연설을 단 두 줄로 해부했고, 누군가는 경제 위기를 장바구니 물가 하나로 설명했다. 어떤 이는 농담처럼 던진 문장 하나로 사람의 폐부를 찔렀다.
가끔은 웬만한 칼럼보다 댓글 한 줄이 더 정확했다.
두꺼운 인문학 책 한 권을 읽으려면 며칠 밤을 붙들려야 한다. 그러나 잘 읽은 댓글 몇 개는 지금 시대 사람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어디에서 웃고 있는지를 순식간에 보여준다.
노안으로 긴 활자를 오래 붙들지 못하게 된 내게 이것은 꽤 효율적이고도 다정한 독서가 되어주었다.
사람들은 흔히 익명을 불신한다.
익명 뒤에는 악의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반대로 생각한다.
익명이라는 가면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인지도 모른다고.
실명이 되는 순간 사람은 체면을 입는다.
사회적 지위를 의식하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자기 검열을 시작한다.
그러면 문장은 길어진다.
진심은 줄어든다.
익명 속에서는 비로소 사람이 자기 속마음을 툭 던진다. 부끄러운 고백도 하고, 가식 없는 분노도 쏟아낸다. 때로는 거칠고 투박한 말까지 튀어나오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살아 있는 인간의 체온이 있다.
나는 그런 문장들을 읽는 것이 좋다.
짧은 댓글 몇 줄만 읽어도 그 사람의 삶이 어렴풋이 보일 때가 있다. 맞춤법 하나, 말줄임표 하나, 농담의 결 하나에도 인품과 태도가 배어난다.
놀랍게도 사람은 긴 자기소개보다 짧은 댓글 속에서 더 쉽게 들킨다.
물론 이 광장이 늘 따뜻한 것은 아니다.
밤늦게까지 댓글을 읽다가 스마트폰 화면을 끄면 설명하기 어려운 허무가 밀려온다.
수천 개의 댓글은 결국 휘발되는 감정의 파편들이기도 하다. 익명은 솔직함을 허락하는 동시에 군중의 잔혹함도 증폭시킨다.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분노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집단의 열기에 휩쓸리는지도 알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히 돋보기를 벗고 어두운 서재를 바라본다.
한 사상가가 평생을 바쳐 써 내려간 책 한 권의 무게와, 수천 명이 몇 초 만에 쏟아낸 댓글 수천 개의 무게를 마음속 저울에 올려본다.
책은 깊은 우물 같다.
댓글은 끊임없이 솟구치는 분수대 같다.
우물은 오래 남고, 분수는 빠르게 흩어진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분수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이것은 늙어가는 육체가 세상의 속도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마지막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또 조금은 인간적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마트폰 화면을 위로 밀어 올린다.
사소한 기사 아래에서 뜻밖의 철학을 발견하고, 이름 모를 누군가의 짧은 농담 속에서 삶의 통찰을 만난다.
종이책의 활자는 예전보다 흐려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여전히 독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책장이 아니라 사람들 속의 행간을 읽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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