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채워지는 시간: 감정은 왜 사실이 아니라 해석에서 시작될까

밤 11시 40분.
스탠드 불빛만 켜 둔 채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노트북 화면은 켜져 있었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밑에 그림 비치는 얇은 종이 있잖아.
그거 좀 사 와.”

나는 문구점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투명한 종이들 사이에서
비슷해 보이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다.

결국 하나를 골랐다.

확신은 없었지만,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포장을 뜯자마자 말했다.

“이거 아니잖아.”

그리고 이어진 말.

“왜 이렇게 제대로 못 사 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슷해서…”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괜히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대신
“다시 사 올게”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건조하게 들렸다.

그 뒤로 나는
물컵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했고,

휴대폰을 켰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껐다.

별일 아닌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장면은 계속 반복됐다.

왜 그렇게 말하지.

왜 저렇게까지 말했지.

밤이 깊어지고,
집 안이 조용해진 뒤에야

나는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창밖 불빛만 바라보면서.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내가 말한 그 종이.

밑에 놓인 그림이 은은하게 비쳐
그 위에 선을 따라 그리면
같은 그림이 완성되는 종이.

흔히 ‘기름종이’라고 부르는 것.

나는 오늘 하루를
그 종이처럼 살아온 건 아닐까.

보이는 말 위에,
보이지 않는 의미를 덧그리면서.

아내의 말은
그저 짧은 지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위에
다른 감정을 겹쳐 그리고 있었다.

서운함.
억울함.
무시당했다는 느낌까지.

그래서 더 선명해졌고,
그래서 더 지워지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는 사실보다
해석에 더 많이 상처받는다.

감정의 대부분은
사건이 아니라
‘덧그림’에서 시작된다.

나는 등을 기대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정리하려 하지도 않았고,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냥 두었다.

그러자 조금씩,
겹쳐 있던 선들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비운다는 것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덧그린 것을
지워내는 일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말 그 자체인지,

아니면
내가 덧그린 것인지.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은 덜 그리기로 한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선을 덧그릴 것이다.

그중 몇 개는,
끝내 지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제
지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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