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세상의 소리가 한꺼번에 멎은 듯했다.
라디오도 휴대전화 알림도 사람들의 웅성임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은 깊은 우물 밑에 가라앉은 돌처럼 무거웠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외나무다리 하나를 보았다. 건너편에는 피하고 싶었던 내가 서 있었다.
외나무다리에서는 비켜 설 자리가 없다. 돌아갈 수도, 남의 뒤에 숨을 수도 없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려면 발밑을 바라보면서도 끝내 고개를 들어야 한다. 외로움도 그와 닮았다. 혼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가장 감추고 싶었던 마음과 마주한다.
사람들은 혼자의 시간을 여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고독이 느긋한 산책은 아니다. 어떤 침묵은 마음의 문을 거칠게 두드린다. 괜찮은 척했던 표정과 바쁘다는 핑계를 걷어 내고 묻는다. 지금의 삶은 정말 네가 원한 삶이냐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대답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사람이었다. 함께 웃었던 얼굴, 무심한 듯 건네받은 따뜻한 말, 말없이 잡아 주던 손이었다. 결국 외로움이 가르쳐 준 첫 번째 진실은 혼자 잘 견디는 법이 아니라 그냥 곁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였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온기를 너무 자주 당연하게 여긴다. 늘 곁에 있으니 내일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고맙다는 말은 미루고 미안하다는 말은 삼킨다. 그러다가 적막이 찾아오면 평범했던 대화 한 조각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외로움은 벌이 아니었다. 마음을 다시 정돈하라는 조용한 신호였다. 소란 속에서는 들리지 않던 내 안의 목소리가 침묵 속에서 비로소 또렷해졌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누구에게 다가가고 싶은지 천천히 알게 되었다.
물론 깨달았다고 금세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외나무다리 한가운데서는 작은 바람에도 몸이 흔들린다. 삶도 그렇다.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데 거창한 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을 버틸 겨자씨만큼 남은 희망 하나면 다음 발을 내디딜 수 있다.
그 한 걸음은 때로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일이다. 미뤄 둔 사과를 건네거나, 보고 싶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이다. 사랑은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행동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외로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말해 주는 입보다 함께 침묵해 줄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외나무다리에서 나를 이기려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나를 나무라지도 않았다. 두려운 채로 서 있는 나를 그대로 바라보고 조용히 끌어안았다. 그러자 건너편에 있던 나는 적이 아니라 오래 기다린 친구처럼 다가왔다.
그제야 알았다. 외로움은 사람을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다시 사람에게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일 수 있다는 것을. 침묵은 삶을 멈추게 하는 빈칸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고쳐 쓰는 여백일 수 있다는 것을. 후회 없는 삶의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삶의 성찰처럼, 오늘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었다.
이제 나는 고요가 찾아와도 서둘러 소리를 켜지 않는다. 잠시 멈추어 내 마음의 발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외나무다리 끝에서 기다리는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당신은 지금 어떤 외나무다리 위에 서 있는가. 그 다리를 건넌 뒤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이 글과 이어지는 이야기는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