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미터, 쇠줄이 풀려도 떠나지 못한 개|짧은 문학 콩트

1.8미터

 

내가 인간의 지능을 가진 채 시골집 똥개로 눈을 뜬 건 3년 전이었다.

목에는 쇠줄이 걸려 있었다.

길이는 정확히 1.8미터.

그게 내 세계의 전부였다.

세 걸음이면 끝이었다.

앞으로 가도 목이 당겼고, 옆으로 가도 당겼다.

대문은 보였다.

갈 수는 없었다.

담장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장에 가는 노인이 지나가고, 가끔 목줄 없는 개도 지나갔다.

나는 그 모든 것을 1.8미터 안에서 바라봤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똥이었다.

먹는 곳과 싸는 곳과 자는 곳이 같았다.

노인은 며칠에 한 번 녹슨 삽을 들고 나왔다.

굳은 똥을 퍼 담장 너머로 던졌다.

여름이면 파리가 들끓었다.

비가 오면 똥과 흙이 섞였다.

겨울이면 그대로 얼었다.

인간이었을 때 나는 청결에 예민했다.

처음에는 사료 그릇 옆에 굳어가는 내 배설물을 보며 미칠 것 같았다.

나중에는 달랐다.

똥이 덜 묻은 자리를 찾는 법부터 배웠다.

인간의 존엄은 그렇게 조금씩 작아졌다.

1.8미터에 맞게.

그래도 노인은 나를 굶기지는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찌그러진 플라스틱 그릇에 사료를 부었다.

가끔 먹다 남은 국에 밥을 말아줬다.

처음에는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몇 달 뒤에는 국 냄새만 나도 꼬리가 움직였다.

몸은 생각보다 빨리 인간을 배신했다.

겨울에는 낡은 담요도 한 장 넣어줬다.

비가 많이 오던 날에는 개집 위에 파란 비닐을 덮었다.

한겨울 새벽이었다.

노인이 술에 취해 마당으로 나왔다.

내 옆에 쪼그려 앉더니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 머리를 긁었다.

“니라도 있으니 됐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오래 기억한다.

개가 되어서도 그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인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방 안 가족사진에서 봤다.

하지만 좀처럼 오지 않았다.

아내는 오래전에 죽은 모양이었다.

밤이면 노인은 혼자 텔레비전을 봤다.

웃음소리가 나오면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가끔 기침만 들렸다.

나는 그럴 때 귀를 세웠다.

새벽까지 방에 불이 켜진 날이면 나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문이 열리면 꼬리를 흔들었다.

노인은 내 머리를 두어 번 긁고 들어갔다.

그 정도였다.

나는 그 정도에 의미를 붙였다.

내가 있어서 이 집에 아직 살아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고.

노인이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고.

그래서 나도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쇠줄이 조금 덜 무거웠다.

나는 어느 순간 1.8미터를 감옥이라고 부르지 않게 됐다.

그냥 내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오늘 아침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흰색 SUV가 대문 앞에 멈췄다.

중년 남자가 내렸다.

가족사진 속 아들이었다.

“아버지!”

노인이 방에서 나왔다.

나는 조금 놀랐다.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던 노인이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왔냐?”

노인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잔금 다 치렀어요. 짐은 내일 센터에서 가져갈 거예요. 오늘 바로 올라가시면 돼요.”

“그래.”

“아버지 방도 따로 있어요.”

노인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노인은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밤마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들지 않아도 된다.

기침을 해도 듣는 사람이 있다.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마당을 둘러보다 나를 발견했다.

“아버지.”

“왜?”

“쟤는요?”

노인이 나를 봤다.

나도 노인을 봤다.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나는 무슨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노인은 잠시 생각했다.

“데려가면 안 되냐?”

내 꼬리가 움직였다.

아들이 웃었다.

“아파트에서 어떻게 키워요.”

“그렇제?”

꼬리가 멈췄다.

“옆집에 줄까?”

“누가 데려가겠어요.”

노인은 다시 나를 봤다.

그리고 지갑을 꺼냈다.

만 원짜리 몇 장을 세었다.

“건강원 박 영감한테 물어봐라. 돈 주면 알아서 할랑가.”

아들이 인상을 썼다.

“아버지. 요즘 그런 거 안 됩니다.”

“안 돼?”

“예.”

노인은 돈을 다시 넣었다.

“그럼 우짜노.”

그게 전부였다.

3년은 생각보다 짧은 말로 정리됐다.

아들이 내게 걸어왔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가 쇠고리를 잡았다.

철컥.

목이 가벼워졌다.

3년 동안 한 번도 풀리지 않았던 쇠줄이었다.

아들이 쇠줄을 바닥에 놓았다.

“그냥 풀어놓고 가죠. 배고프면 어디 가서 얻어먹겠죠.”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짐을 다 싣고 차에 올랐다.

나는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쯤 내게 올 줄 알았다.

머리를 긁어줄지도 몰랐다.

노인은 차 안에서 마당을 둘러봤다.

감나무를 봤다.

장독대를 봤다.

집을 봤다.

나도 봤다.

우리 눈이 잠깐 마주쳤다.

노인이 차창을 내렸다.

나는 일어났다.

“문 잘 닫아라.”

아들에게 한 말이었다.

아들이 웃었다.

“쟤 나가야죠. 열어놔야지.”

“아, 참.”

차창이 올라갔다.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짖지 않았다.

흰색 SUV가 골목 끝에서 사라졌다.

엔진 소리도 사라졌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나는 목을 움직여봤다.

아무것도 당기지 않았다.

한 걸음 앞으로 갔다.

괜찮았다.

두 걸음.

세 걸음.

멈췄다.

늘 여기서 쇠줄이 목을 잡아챘다.

오늘은 아니었다.

한 걸음 더 갔다.

처음 밟아보는 흙이었다.

나는 냄새를 맡았다.

별것 없었다.

조금 더 걸었다.

감나무 밑에 도착했다.

3년 동안 매일 바라보던 나무였다.

겨우 몇 걸음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바라본 개집은 낯설게 작았다.

나는 대문으로 갔다.

열려 있었다.

대문 밖에는 길이 있었다.

나는 수도 없이 저 길을 보고 살았다.

저곳에 가면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앞발 하나를 밖으로 내밀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쇠줄은 당겨오지 않았다.

나는 나머지 발도 옮기려 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는 모르는 냄새가 났다.

자동차가 지나갔다.

멀리서 개들이 짖었다.

사람 목소리도 들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산으로?

마을로?

사람에게로?

나는 인간이었을 때 수많은 곳을 다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처음 보는 도시에서 길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문 하나를 넘지 못했다.

배가 고파졌다.

나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빈 밥그릇이 보였다.

아침이면 사료가 떨어지던 곳.

저녁이면 다시 사료가 떨어지던 곳.

나는 그릇을 바라봤다.

그리고 길을 바라봤다.

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밥그릇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쪽이 기다리면 채워지는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앞발을 거뒀다.

마당으로 돌아왔다.

감나무를 지나고,

처음 밟아본 흙을 지나고,

세 걸음을 더 걸었다.

개집 앞에서 멈췄다.

바닥에 쇠줄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옆에 누웠다.

해가 넘어갔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밤이 됐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왔다.

밥그릇은 비어 있었다.

나는 대문을 바라봤다.

여전히 열려 있었다.

한참 바라보다 다시 엎드렸다.

둘째 날에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배가 아팠다.

물그릇 바닥까지 핥았다.

대문 밖에서 음식 냄새가 났다.

나는 일어났다.

대문 쪽으로 걸었다.

세 걸음.

그리고 멈췄다.

목은 당기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서 있었다.

다시 한 걸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더는 가지 못했다.

나는 뒤로 돌아왔다.

개집 앞에 누웠다.

그때 바닥의 쇠줄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끝은 기둥에 묶여 있었다.

다른 쪽 끝에는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조금 몸을 움직였다.

목걸이 옆에 목을 내려놓았다.

차가운 쇠가 털에 닿았다.

이상하게 편안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무언가가 목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쇠줄은 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날도 대문은 열려 있었다.

쇠줄도 풀려 있었다.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누운 자리는,

기둥에서 정확히 1.8미터 안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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