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취소되었다.
휴대전화에 짧은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한 마음은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안도감이었다.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다.
한때는 그런 내 성격이 못마땅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인맥이 넓어진다고 했고, 모임에 자주 나가야 삶이 풍성해진다고 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 내성적이라는 말을 들었고, 조용하면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애써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웃고,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했다.
즐거웠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 비로소 긴 숨이 나왔다.
그제야 하루가 끝난 것 같았다.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늘 그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생들과 웃고, 수업을 하고, 동료 교사들과 회의를 했다. 학교는 늘 사람과 말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행복했다.
하지만 퇴근길 자동차 안에 앉으면 곧바로 시동을 걸지 못했다.
창문을 조금 내리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몇 분이 하루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는 시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침묵도 휴식이라는 것을.
퇴직한 뒤에는 그 시간이 더 많아졌다.
새벽이면 노트북을 켠다.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본다.
집 안은 고요하고, 세상도 아직 잠들어 있다.
나는 그 적막이 좋다.
그 시간에는 아무에게도 맞출 필요가 없다.
누군가의 속도도, 표정도, 기대도 없다.
오직 나와 생각만이 마주 앉아 있을 뿐이다.
혼자가 편한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보다 생각과 오래 대화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쉽게 흘려보내지 못한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마음속은 늘 분주하다.
갈등을 싫어하는 것도 약해서가 아니다.
사람을 잃는 일이 이기는 것보다 더 아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서는 날이 많다.
혼자 있는 시간도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없는 하루지만, 마음속에서는 오래된 기억들이 천천히 꽃을 피운다.
퇴직 후 나는 자주 혼자 바다를 걷는다.
밀물이 빠진 갯벌을 바라보고 있으면 삶도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했던 파도는 사라지고, 드러난 뻘에는 조개껍데기와 작은 생명들이 남아 있다.
사람도 그렇다.
북적이는 시간보다 조용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진짜 마음을 만난다.
사람들은 혼자가 편한 사람을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로움은 사람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수십 명과 함께 있어도 외로운 날이 있고, 혼자 바다를 걸으면서도 마음이 가득 찬 날이 있다.
혼자가 편한 사람은 사람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오래 사랑하기 위해 혼자 쉬는 사람이다.
나도 이제는 안다.
혼자는 도망치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모으는 시간이라는 것을.
세상은 늘 함께 있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숲의 한가운데에서만 자라는 것은 아니다.
절벽 끝에 홀로 선 소나무도 바람을 견디며 깊은 뿌리를 내린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사람들 속에서 힘을 얻고,
누군가는 고요 속에서 자신을 회복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삶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마음이 숨 쉬는 곳을 아는 사람이 가장 오래 걸어간다.
오늘도 나는 새벽에 노트북을 켠다.
혼자 글을 쓰고,
혼자 차를 마시고,
혼자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가장 혼자인 그 시간에,
나는 어머니를 만나고,
오래전 학생들을 만나고,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저는 혼자가 편합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일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끝나면 사람을 더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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