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실 바닥에 신문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아내는 전지가위를 들고 인도고무나무 앞에 섰다. 내 어깨를 훌쩍 넘긴 나무였다. 짙은 녹색 잎은 윤기가 났지만, 위로만 길게 자란 가지 때문에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서걱.
굵은 가지 하나가 신문지 위로 떨어졌다. 멀쩡한 잎 몇 장이 뒤집혔다.
서걱.
이번에는 더 긴 가지였다.
“너무 많이 자르는 거 아니야?”
아내는 잘린 단면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해야 밑에서도 새순이 나와.”
가위가 다시 닫혔다.
잘린 단면에서 뽀얀 수액이 맺혔다. 아내는 휴지로 닦았다. 닦고 돌아서면 작은 방울이 다시 배어 나왔다.
가지치기가 끝난 인도고무나무는 낯설었다.
천장을 향하던 가지가 사라지고 굵은 줄기만 남았다. 거실은 넓어졌는데 나는 오히려 비어버린 곳을 자꾸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나도 변화는 없었다.
희던 단면은 누렇게 변하다가 갈색으로 굳었다. 나무는 성장을 멈춘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책상 하나가 떠올랐다.
밤마다 그 책상에 앉아 한 가지 일을 준비했다. 달력에는 날짜마다 줄이 그어져 있었고, 책상 귀퉁이에는 식은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그 길밖에 없다고 믿었다.
결과를 확인한 날, 화면에는 불합격이라는 짧은 글자가 떠 있었다.
더 막막했던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을 떴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책상에 앉지 않았다. 달력의 다음 날짜에도 줄을 긋지 않았다.
나를 오래 붙들었던 것은 실패보다 끝났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아침이었다.
물을 주려고 화분 앞으로 갔다가 작은 붉은 점 하나를 발견했다.
몸을 숙여 들여다보았다.
잘린 자리 바로 아래, 잎자루와 줄기가 만나는 틈에 좁쌀만 한 돌기가 돋아 있었다.
새순이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조금 아래에도, 오랫동안 잎 하나 내지 않던 굵은 줄기에도 붉은 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물뿌리개를 든 채 한참 바라보았다.
위로 향하던 가지는 사라졌다.
그런데 인도고무나무는 잘린 곳을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 아래에서 다른 방향을 만들고 있었다.
며칠 뒤 새순이 부풀었다. 붉은 껍질 사이로 연두빛이 비쳤다.
그 모습을 보며 오래전 그 책상 이후의 시간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실패하기 전으로 돌아가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들어왔다. 우연히 시작한 일이 다음 일을 불러왔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잠시 머물 길이라 여겼는데 어느새 그곳에도 내가 살아온 시간이 쌓여 있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잘린 가지를 원래 자리에 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삶의 새순은 때로 이전과 다른 자리에서 돋았다.
나는 고무나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잘린 단면은 이미 갈색으로 굳어 있었다. 새순은 그곳이 아니라 조금 비껴난 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주 작은 거리였다.
그러나 그 작은 어긋남 때문에 새 가지는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며칠이 더 지나자 붉은 껍질이 벌어지고 연두빛 잎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새순이 났네.”
내 말에 아내는 화분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럴 줄 알고 자른 거야.”
그러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는 웃었다.
아내에게는 평범한 가지치기였고, 인도고무나무에게는 오래된 성장의 방식인지도 몰랐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한때 나는 잘려 나간 것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닫힌 문이 다시 열리기만 기다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에도 삶은 다른 자리에서 작은 방향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새순을 보며 희망이라는 큰 말을 떠올리지 않았다.
그날 내가 본 것은 그보다 작았다.
잘린 자리 아래에 돋은 붉은 점 하나.
그것이면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자 새 잎은 손바닥만큼 커졌다. 인도고무나무는 예전처럼 위로만 뻗지 않고 조금씩 옆으로 가지를 내기 시작했다.
어느 아침, 나는 물을 주다가 오래전 잘린 자리를 다시 보았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갈색으로 굳은 흔적이 줄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화분을 창가 쪽으로 조금 돌려놓았다.
빛이 새로 난 잎 쪽으로 기울었다.
잘린 자리는 그대로였다.
그 아래에서 새 잎 하나가 빛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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