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논길은 늘 살아 있었다. 이랑을 밟고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무언가 튀어 오르곤 했다. 개구리였다. 짧은 탄성과 함께 잎 사이로 사라지던 그 생명은, 어린 나에게 두렵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한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들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회초리를 들고 뒤쫓았고, 손에 쥔 채 소리 지르며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개구리는 도망치고, 우리는 웃었다. 그 시절엔 생명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때는 개구리가 흔했다. 논두렁엔 늘 넘쳐났고, 잡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들과는 누가 더 많이 잡나 내기를 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뒷다리만 떼어내 구워 먹기도 했다. 친구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양계장에선 개구리 한 마리에 1원을 쳐주기도 했다. 1원짜리 생명. 지금 생각하면 참 씁쓸한 가격표다.
뱀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어귀 바위 틈이나 풀숲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뱀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용기를 증명하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막대기로 머리를 가격하거나 꼬리를 잡아 휘두르며, 우리는 어른들처럼 행동하고 싶어 했다. 그 긴 몸이 땅에 처박히며 꿈틀거리다 멈추는 순간, 우리 안엔 어떤 승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생명이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벌은 우리를 자주 쏘았고, 우리는 벌을 자주 괴롭혔다. 참나무 아래에 있는 벌집을 향해 돌을 던지고, 연기를 피워 쫓아내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 번은 심하게 쏘였지만, 그보다 벌집을 찾아냈다는 흥분이 더 컸다. 벌이 벌인 싸움은 생존이었지만, 우리는 단지 재미였다.
사슴벌레는 조금 달랐다. 힘이 세고, 모습이 멋져서 아이들 사이에서 귀한 존재로 여겨졌다. 밤이면 손전등을 들고 참나무를 찾아다녔다. 시큼한 나무 진 냄새가 나는 곳엔 어김없이 사슴벌레가 있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모아 투명 플라스틱 통에 가두었다. 누가 더 크고 강한 녀석을 잡았는지 비교했고, 심지어 곤충 싸움을 시키며 희열을 느꼈다. 그 작은 생명들이 두려움 속에서 움직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후, 뱀과 개구리가 몸에 좋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산에서 채취한 뱀술, 개구리 요리, 뱀탕. 그렇게 자연의 생명들은 다시 한 번 인간의 욕망 앞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한국에서 무언가 ‘건강에 좋다’는 말이 돌기 시작하면, 그 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맛과 효능이 입에 오르내리는 동안, 한 종의 생태적 역할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다행히 지금은 일부 개구리와 뱀 종이 법적 보호를 받고 있다. 그 생명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법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법은 단지 명목일 뿐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순간들이 참 많다. 무지했던 만큼 잔인했고, 순수했던 만큼 무례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여름날, 개구리의 마지막 숨소리를 듣지 못한 내 귀, 뱀의 몸부림을 우습게 여겼던 내 눈, 벌의 고통을 무시한 내 손.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기억이 되었다.
지금 나는 숲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개구리에게 길을 내준다. 산책 중 뱀을 보면 조용히 발걸음을 멈춘다. 벌이 가까이 날아들어도 함부로 손을 휘젓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배운 건, 생명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이다.
언젠가 내 아이가 논길을 걷다 개구리를 보게 되면 말해주고 싶다. 저 생명은 네가 만져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우리가 어릴 적 몰랐던 것을, 너는 알면서 자라면 좋겠다고.
자연은 결코 우리만의 놀이터가 아니었다. 그 안엔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던 수많은 생명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들에게 사과한다. 어릴 적 무심히 휘두르던 손 끝에서 꺼져가던 그 작은 숨결들에게, 늦었지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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