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나는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마지막으로 교실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소리는 생각보다 컸고, 복도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창가로 늦은 오후의 햇빛이 들어와 교실 바닥에 길게 누워 있었다.
아이들이 밀어 놓고 간 의자는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어정쩡했고,
칠판 한쪽에는 지우다 만 분필 가루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마치 그 가루가 내가 이곳에 남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교 명예퇴직을 한 지 2년,
그리고 시간강사로 보낸 1년.
나는 여전히 ‘떠난다’는 일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퇴직은 직함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맺어온 거리,
매일 반복되던 시간의 리듬,
아무 생각 없이 불러왔던 하루의 구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일이었다.
학생들이 회람용 편지를 건네주었다.
봉투를 받아 들고도 나는 한동안 열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조차 준비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늘 학생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친절했지만 조심스러웠고,
다정했지만 쉽게 마음을 내주지는 않았다.
그것이 교사로서의 책임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나는 나에게 묻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책임이었을까.
아니면 상처받지 않기 위한,
관계에서 한 발 물러선 나 자신의 비겁함은 아니었을까.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도 떠올랐다.
점심시간의 형식적인 인사,
회의실에서의 의례적인 웃음.
조금만 더 다가갈 수 있었지만
나는 늘 “다음에”라는 말을 남겨 두었다.
변화는 항상 그렇게 찾아왔다.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지만
나는 늘 상황이 닥친 뒤에야 허둥지둥 적응했다.
그리고 떠날 때가 되어서야
그 시간을 소중하다고 불렀다.
이제 나는 분명 노년의 초입에 들어섰다.
사회의 중심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내 말의 속도는 누군가에게 느리게 느껴질 것이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고,
아직은 일을 할 수 있고,
아직은 가족을 위해 밥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아직’이라는 말이 얼마나 불안한 단어인지 알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잃어가기 시작할 때 더 선명해진다.
젊을 때는 하루가 가벼웠고,
내일은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다르다.
하루는 무게를 가지고
아침은 조심스럽게 시작된다.
기능이 줄어들수록
삶에 대한 집착은 커진다.
그제야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고,
이승에 조금만 더 머무르고 싶어진다.
꽃은 피어 있을 때보다
지고 난 뒤에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젊음은 눈부시지만,
노년은 오래 남는다.
오늘 이 교실,
이 햇빛,
이 침묵은
언젠가 나를 붙잡아 줄 기억이 될 것이다.
잘하지 못했던 순간들,
다가가지 못했던 마음들까지 포함해서
나는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나의 삶이었고,
이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고.
교실을 나서며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과장해 주던 세계를 떠나는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오늘,
비로소 나는
조금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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