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나는 시흥의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는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산책로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공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늦은 겨울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가로수는 마른 가지를 드러낸 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서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멈춰 있는 풍경 속에서,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변화를 먼저 감지하려 애쓴다.
사람들은 보통 꽃이 피어야 봄이 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봄은 언제나 그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공기의 결이 아주 미세하게 풀리는 순간,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어딘가 달라지는 순간—그때 이미 계절은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것은 몇 해 전, 비가 내린 다음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산책로를 걷다가 공터 한쪽에 쌓인 낙엽 더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젖은 낙엽들은 서로 들러붙어 있었고, 일부는 이미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피하고 싶은 풍경에 가까웠다.
그런데 발을 떼지 못했다.
한 발짝 물러서려다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 괜히 신발 끝으로 낙엽을 건드려 보았다가, 곧 멈췄다. 눌린 낙엽 사이에서 검게 변한 부분이 스며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썩어가는 냄새이기도 했고, 동시에 이상하게 따뜻한 냄새이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조금 불편해졌다.
저렇게 무너지는 게 맞는 걸까. 저 상태를 ‘과정’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의 나는 여전히 “떨어지는 것 = 끝”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낙엽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래로 스며들고 있었다. 형태는 분명 무너지고 있었지만, 그 안의 무언가는 흙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겉에서 보면 끝이지만, 안에서는 다른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돌아가야 했지만,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장면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왜인지 모르게, 그 모습이 내 상태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었다.
익숙하게 해오던 방식들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버리기에는 두려웠다. 글을 써도 이전처럼 매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 무언가 내려놓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것이 맞는 방향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낙엽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 모습이 내가 피하고 싶은 상태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장면을 다르게 기억하게 되었다.
낙엽은 단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낙엽은 가장 아래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이동은, 사라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기 위한 준비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준을 바꾸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놓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놓는다는 것은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작용하기 위한 이동이다.
변화는 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 먼저 진행된다.
낙엽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개입이다.
이 세 문장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버티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내려가는 것을 받아들인다.
익숙했던 방식을 일부러 벗어나고, 잘 되던 흐름을 끊어보고, 불안하더라도 새로운 선택을 한다. 그 과정은 여전히 불편하다. 여전히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감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나는 계절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봄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 꽃이 피기 전에 이미 땅속에서는 수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 흐름이, 어느 날 갑자기 표면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묻지 않는다.
언제 봄이 오는지.
대신 확인한다.
지금, 내 안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떨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익숙한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 속에서.
하지만 그 방향이 아래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끝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그 낙엽들처럼, 우리는 지금 더 깊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을 뿐, 이미 변하고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특별할 것 없는 아침에 문득 알게 된다.
이미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나는 다시, 조용히 확신하게 된다.
나는 기다린 적이 없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아래로 내려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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