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을 움켜쥔다는 것: 불완전한 삶에서 시작되는 성장 수필

냄새가 먼저였다.
눈보다 먼저, 기억보다 먼저.

대야동 상가 뒤편 골목.
햇볕에 데워진 음식물 찌꺼기와 젖은 비닐, 오래 묵은 먼지가 한꺼번에 들러붙은 냄새.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몸이 먼저 거부했다.
그런데 발은 멈췄다.

이상하게도, 그 자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검은 봉지 하나가 찢어져 있었다.
안쪽이 훤히 드러난 채, 아무렇게나 벌어진 입.

그 틈 사이에서
보라색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작았다.
너무 작아서, 의식하지 않으면 끝내 보지 못했을 크기.

나는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 꽃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그건 ‘피어났다’기보다
‘밀어 올렸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딱딱하게 굳은 바닥,
썩어가는 것들,
형태를 잃어가는 잔해들 사이에서

자기 몸 하나를 끝까지 끌어올린 흔적.

그 주변은 전부 무너지고 있었다.

깨진 사발,
찌그러진 캔,
눅눅하게 내려앉은 음식물.

모든 것이 자기 모양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그 꽃만은 또렷했다.

이상할 만큼.

문득, 손이 떠올랐다.

어릴 때, 비 온 다음 날 공터에서
진흙을 움켜쥐던 손.

질척거리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던 흙.

그때 나는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건 단단하다고 느껴졌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자리에서
혼자 버티는 것들.

그건 예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 있기 위해,
그냥 그렇게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동안
자주 멈췄다.

조건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조금 더 나아지면 시작하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환경이 문제라고 믿는 건 쉬웠다.
그래야 기다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골목에는
기다리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썩어가는 것들도,
무너지는 것들도,
그 위에서 올라오는 것들도

모두 동시에 진행 중이었다.

멈춘 것은 없었다.

그 꽃은
깨끗한 흙을 요구하지 않았다.

냄새를 피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끌어올려
자기 색을 만들고 있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방향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여전히 냄새는 불쾌했고
풍경은 거칠었다.

그런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틈을 피하려고만 했다는 걸.

불완전한 자리,
지저분한 시작,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 모든 것을
‘아직 아님’이라고 밀어냈다는 걸.

하지만

그 꽃은
바로 그 틈을 붙잡고 있었다.

놓지 않고,
버티는 게 아니라
밀어 올리고 있었다.

완벽한 시작은 없다.

정리된 자리도 없다.

대신
틈은 있다.

그리고

그 틈을 움켜쥐는 순간,
삶은 시작된다.

나는 이제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조금 부족한 채로,
조금 어수선한 채로,

그래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혹시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도
그런 틈이라면,

그건
피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붙잡아야 할 자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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