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 후 새로운 일을 생각하는 아내와 용인 남사 화훼단지로 향했다.
꽃을 사러 가는 길은 아니었다. 아내가 마음에 품기 시작한 식물 사업이 현실이 될 수 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식물을 좋아했다. 아침이면 거실의 화분을 살피고 마른 잎을 떼었다. 가끔 부드러운 천으로 관엽식물의 넓은 잎을 닦았다.
어느 날 아내가 물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것하고 파는 것은 많이 다르겠지?”
좋아하는 식물은 정성껏 돌보면 된다. 그러나 판매를 위해 들여온 식물은 살아 있는 재고다. 물과 빛이 필요하고 온도와 습도를 맞춰야 한다. 팔리지 않는 동안에도 자라고 때로는 시든다.
우리는 인터넷 대신 현장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으로 들어서자 도로 주변에 온실과 화훼 농장이 이어졌다. 햇빛을 받은 비닐하우스 지붕이 희게 반짝였다.
용인 남사 화훼단지는 하나의 단일 매장이 아니다. 남사읍 일대에 화훼 생산 농가와 유통·판매 시설이 모여 있는 대규모 화훼 유통 지역이다.
2026년 7월 SBS 보도에 따르면 남사 화훼단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화훼 유통망을 갖춘 곳으로, 전국 7천여 농가에서 재배한 1만여 품종의 화훼가 거래된다.
온실 문을 열자 그 규모가 실감났다.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흙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과 다른 계절이 펼쳐졌다.
작은 다육식물부터 사람 키를 넘는 관엽식물까지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꽃을 보는 식물, 잎의 색과 무늬를 즐기는 관엽식물, 독특한 줄기와 뿌리를 감상하는 괴근식물까지 다양했다.
아내는 식물보다 먼저 가격표를 보았다.
비슷한 크기의 식물이 다른 판매장에서는 얼마인지 비교했다. 잎과 새순의 상태를 살피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수첩에는 식물 이름과 가격을 적었다.
나는 어느 순간 식물보다 아내의 손을 보고 있었다.
거실에서 잎의 먼지를 닦던 손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화분을 들어 무게를 가늠하고 잎을 뒤집어 상품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참을 살피던 아내가 말했다.
“예쁘다고 다 가져오면 안 되겠네.”
그 말이 식물 사업의 현실을 압축하고 있었다.
식물 사업은 살아 있는 상품을 다루는 일이다. 사입 가격뿐 아니라 생육 관리와 재고 기간, 계절 변화, 폐기 위험, 포장과 배송까지 함께 계산해야 한다.
겨울에는 난방이 필요하고 여름에는 고온과 습도를 관리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면 운송 과정의 냉해와 고온 피해도 고려해야 한다.
화훼산업은 날씨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2024년 11월 경기 남부의 기록적인 폭설 당시 남사읍에서는 65개 화훼농가와 비닐하우스 279동의 피해가 접수됐고, 잠정 피해액은 약 230억 원으로 파악됐다. 이후 용인시는 폭설 피해에 따른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됐다.
잘 자란 식물 한 포기 뒤에는 농가의 노동과 시설비, 날씨의 위험이 함께 있었다.
몇 군데를 돌자 발바닥이 뜨거워지고 옷이 등에 달라붙었다. 아내도 처음보다 말수가 줄었다.
내가 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아내가 웃었다.
“그러니까 직접 와보길 잘했지.”
시장조사는 가능성만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남사에 오기 전까지 식물 사업은 막연했다. 현장에 와보니 질문이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어디에서 사입할 것인가. 어떤 품종을 취급할 것인가. 얼마나 들여올 것인가. 팔리지 않은 식물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온라인 판매는 어떻게 포장하고 배송할 것인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식물과 잘 팔리는 식물이 다를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질문이 많아졌지만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졌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막연한 꿈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
몇 시간을 걷고 차로 돌아왔다.
아내는 조수석에서 수첩을 펼쳤다. 식물 이름과 가격이 빼곡했다. 휴대전화에 찍어둔 사진과 숫자를 번갈아 확인했다.
내가 물었다.
“그래도 해보고 싶어?”
아내는 잠시 수첩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씩 더 알아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대답이 좋았다.
확신보다 현실적이었다.
퇴직 후에는 누구나 한 번쯤 묻게 된다.
이제 무엇으로 세상과 연결될 것인가.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는 식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집에 사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삶의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용인 남사 화훼단지 방문은 단순한 주말 나들이가 아니었다. 아내에게는 식물 사업의 현실을 확인하는 시장조사였고, 나에게는 아내의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아내는 피곤해 보였지만 수첩을 가방에 넣지 않았다.
아직 무엇을 팔지, 언제 시작할지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날 남사에서 얻은 것도 성공에 대한 확신은 아니었다.
대신 다음에 무엇을 알아봐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새로운 시작은 모든 답을 가지고 출발하는 일이 아니다. 다음에 물어야 할 질문 하나를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거실의 관엽식물 앞으로 갔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손끝으로 잎 하나를 가볍게 쓸었다.
아침과 같은 식물이고 같은 손이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아내는 다시 수첩을 펼쳤다.
그날 밤, 나는 글의 첫 문장을 생각했다.
아내는 식물의 첫 가격을 계산했다.
♣
*관련글 보기
유치원 행진곡|동시 창작과 문학적 상상력, 구름이 된 거북이와 사슴
산이 어머니를 데려갔다 — 단풍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산행
선비천사의 브런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이 글이 마음에 남으셨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나눠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카카오뱅크: 3333-35-3671093 (방철호)
이 글들을 엮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라는 전자책으로 만들었습니다.
👉 전자책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