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의 변, 일상 속 문명과 위생을 다시 생각하다

나는 흔하고 평범하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나를 쓴다. 부드럽고 하얀 나의 몸은 손끝에 닿는 순간 사라질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나는 화장지다. 사람들은 나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말하자면, 나는 조용한 기록자다. 문명의 표면을 닦아내고, 인간의 본능을 감춘다.

나는 문명과 함께 자라났다. 더 깨끗하게, 더 정돈되게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나를 필요로 했다. 식사 후 입가를 훔치고, 땀에 젖은 손바닥을 닦아내며, 때로는 흘린 눈물을 받아낸다. 나는 삶의 자투리들을 정리하는 조용한 존재다.

나의 자리는 특정하지 않다. 부엌, 거실, 서랍 속, 가방 안, 자동차의 콘솔 위, 그리고 가장 은밀한 공간인 화장실까지. 나는 늘 곁에 있으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를 쓰는 사람은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필요할 때 꺼내어 사용하고, 흔적 없이 버릴 뿐이다.

나는 닦는다. 기름기, 물기, 먼지, 때론 감정까지. 사람들은 화장을 지우고, 눈물을 훔치며, 입술의 흔적을 정리한다. 나는 그렇게 문명의 표면을 유지한다. 문명은 본능을 정제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감추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그 경계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닦아낸 자리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치 그 일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 부드러운 섬유에 스며든 하루의 피로, 감춰진 슬픔, 혹은 말 못 할 본능의 흔적을. 그 모든 것을 나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흘려보낸다.

사람들은 나의 부재를 농담처럼 말하지만, 정작 없으면 불편함이 아주 크다. 화장실에서 나를 찾을 수 없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그 순간 사람들은 깨닫는다. 나처럼 작고 소모적인 존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사용되고, 접히고, 찢기고, 버려진다. 하지만 나 없이는 위생이 유지되지 않고, 질서가 흐트러진다. 위생과 정돈, 이 두 가지는 현대 문명의 뼈대다. 그리고 나는 그 뼈대를 조용히 떠받치고 있다.

때때로 나는 인간의 감정을 가까이서 본다. 사랑이 끝난 후의 눈물, 아이의 콧물, 노인의 기침, 고단한 하루 끝에 남겨진 얼룩.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있었다. 말없이 곁을 지키며, 흔적을 감싸 안고, 사라지는 일을 반복했다.

나에게는 향기도 있고, 무늬도 있고, 때로는 두툼한 질감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가치는 겉모습에 있지 않다. 나는 기능하는 존재이고, 도와주는 존재이며, 기억되지 않는 존재다.

나는 스스로를 문명의 끝자락이라 부른다. 화려한 빌딩이나 스마트폰 뒤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질서의 조각. 사람들은 나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진정한 문명은, 사소한 질서와 위생 위에 서 있다. 나 없이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당신은 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남고, 감정의 잔재가 드러나는 그런 삶. 불편하고 혼란스럽고, 어쩌면 더 솔직한 세계. 하지만 아직 그곳은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은 오늘도 나를 찾는다.

나는 화장지다. 작고, 얇고, 쉽게 사라지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나는 문명과 감정의 중간 어딘가에서 조용히 일한다. 당신의 하루를 조금 더 깨끗하게,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내일도, 나는 당신 곁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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