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타이어를 보며: 멈춘 자리에서 되돌아본 은퇴한 삶”

타이어 정비소 구석, 폐타이어들이 소리 없이 쌓여 있었다.
윤기를 잃은 고무 표면, 갈라진 틈 사이로 낀 흙먼지, 매끈해져버린 밑창.
그 무더기 앞에 멈춰 선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고단함.
그 안에 내가 있었다.

그들도 한때는 새로웠을 것이다.
반들반들 윤이 나고, 방향을 막 배우던 그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처음 도로에 닿을 때의 떨림, 햇살과 바람 속을 달리던 첫 걸음.

그리고 어느새,
비와 진흙, 자갈과 요철을 지나며
조금씩 무늬가 닳았을 것이다.

어떤 타이어는 고속으로 달리다 급제동을 반복했을 테고,
어떤 타이어는 무거운 짐을 실은 채 산비탈을 올랐을 것이다.

간혹 날카로운 못에 찔리고도,
공기를 조금 채운 뒤 다시 길을 나섰을 것이다.

그렇게 타이어는,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달렸을 것이다.

나는 알 것 같았다.
그 무게와 마모, 그리고 침묵 속의 인내를.
왜냐하면 나 역시, 그런 시간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한평생 누군가를 실어 날랐다.
미끄러지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앞만 보게 하려고 애썼다.

때로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저 굴렀다.

속도를 내라 하면 내었고,
멈추라 하면 멈췄다.
그 와중에 나는 점점 내 안의 무늬를 잃어갔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이름이 점점 덜 외워졌고,
나보다 젊은 동료들의 말이 낯설게 느껴졌으며,
종이 울려도 발걸음이 예전만큼 가볍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차례가 끝났다는 통보처럼
퇴직이라는 말을 마주했다.

모든 걸 버틴 뒤에야,
조용히 쌓이는 폐타이어처럼
나는 그렇게 멈춰 섰다.

그러나 폐타이어는 쓰레기가 아니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또 다른 쓰임을 찾아간다.

놀이터의 바닥이 되어 아이들을 품고,
운동장 한 켠에서 누군가의 넘어진 무릎을 받아낸다.

말없이,
여전히 누군가를 지탱하는 존재로 남는다.

나도 이제, 그런 시간을 살아간다.

칠판 앞은 아니지만,
손주 옆에서 책장을 넘기고,
누군가의 인생이 흔들릴 때
조용히 어깨를 다독여줄 수 있는 나로 남고 싶다.

더는 달리지 않아도 괜찮은,
그러나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로.

타이어는 달리는 동안엔 결코 자신을 돌아볼 수 없다.
오직 멈춘 뒤에야,
자신이 지나온 길의 흔적을 마주한다.

나는 지금, 그 멈춘 자리에서
굳은살 박힌 마음과 닳은 흔적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내 삶의 고개를 넘고 있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나, 참 잘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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