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길에서 단풍을 마주하면
나는 늘 잠시 멈춰 선다.
붉고 노란 색들이 나무 위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이내 낙엽으로 내려앉는 그 장면.
그걸 보면 문득,
사람의 감정도
저렇게 물들다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다.
작년 가을,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대학교 앞 골목.
사진 속 나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를 향하지 않은 눈,
기울어진 어깨,
말하지 못한 마음.
그 시선의 끝에는
두 계절을 기다리며
끝내 고백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 내 마음이
단풍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풋풋한 초록빛이었다.
조심스럽고 서툴렀다.
괜히 그 사람이 다니는 수업 시간에
도서관에 들렀고,
아무 이유 없이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감정은 붉게 물들었다.
마음은 뜨거웠지만
입술은 아무 말도 내지 않았다.
가을이 다 지나도록,
나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유학을 떠났다.
우리는 끝내 아무 일도 없던 사람으로 남았다.
단풍은 절정을 지나고서야
땅에 떨어진다.
사랑도 그렇다.
가장 짙을 때, 오히려 말하지 못한다.
가장 붉을 때,
숨기지 못하고
드러난다.
그리고 그제야,
후회가 시작된다.
단풍잎은 떨어지고 나면
말라가고,
바람에 흩어진다.
사람의 감정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하지만
그게 사라진 건 아니다.
낙엽은 땅에 쌓여
다음 계절을 위한 거름이 된다.
말하지 못한 순간들도
우리 마음속에 남아
다음 사랑의 밑거름이 된다.
나는 그때 사랑을 못 했지만,
그 실패 덕분에
누군가를 오래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안다.
사랑도 익어야 진짜가 된다는 걸.
가을이 되어서야 단풍이 붉듯,
어떤 마음은
떠난 뒤에야
비로소 진심을 드러낸다.
오늘 아침,
산책길.
가지 끝에 남은
마지막 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그건 마치,
하지 못한 마지막 한마디 같았다.
—
“그때, 내가 당신을 좋아했어요.”
비로소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서 꺼낼 수 있었다.
이제야 조금,
덜 부끄러운 사랑이 되었다.
🌿 가을,
당신의 마음에도
조용히 단풍이 내려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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