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이 전하는 위로|가시에 숨은 사랑과 상처의 의미

작은 화분에서 가시를 세우고 자라는 푸른 선인장

창가에 작은 선인장 하나가 있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별말이 없다. 잎이 시들었다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햇볕이 부족하다고 화분을 박차고 나가지도 않는다. 무심한 주인을 만난 식물 가운데 선인장만큼 눈치 빠른 존재도 드물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면 태도가 달라진다. 둥글고 푸른 몸마다 가시가 빽빽하다. 만져 보려는 손을 향해 먼저 경고한다. 보기만 하라는 뜻인지, 더 가까이 오려면 각오하라는 뜻인지 알 수 없다.

선인장의 가시는 약한 속살을 지키는 방법이다. 메마른 곳에서 수분을 빼앗기지 않고 살아남으려 잎을 가시로 바꾸었다. 그러니 그 날카로움은 공격보다 생존에 가깝다. 아름다움 안에도 가시가 함께 자란다는 사실을 선인장은 온몸으로 보여준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말끝이 뾰족해질 때가 있다. 마음이 단단해서가 아니라 다시 다칠까 두려워서다. 무심한 표정 뒤에는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차가운 대답 속에는 먼저 다가가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숨어 있다.

나 역시 그런 적이 많았다. 서운하면 솔직히 말하는 대신 입을 닫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괜찮다고 큰소리쳤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혼자 튼튼한 척했다. 마음에는 비가 필요한데 얼굴에는 사막을 걸어 놓고 살았다.

가시는 편리하다. 남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문제는 위로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는 데 있다. 상처를 피하려 세운 울타리가 어느새 외로움을 가두는 담장이 된다.

선인장은 사막에서 무작정 참기만 하는 식물이 아니다. 내리는 비를 놓치지 않고 몸속에 저장하며, 뜨거운 낮과 차가운 밤을 자기 방식으로 건넌다. 견딘다는 것은 아픔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사람의 회복도 그렇다. 괜찮지 않은 날에는 괜찮지 않다고 인정해야 한다. 잠시 쉬고, 누군가의 손을 빌리고, 마음속에 남은 작은 물 한 모금을 지켜야 한다. 무기력과 자기혐오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마음은 강한 척하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메마름을 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백년초는 제주에서 자라는 손바닥선인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납작한 줄기가 손바닥을 이어 붙인 모습이라 그런 이름을 얻었다. 이름만 들으면 백 년을 한자리에서 버틸 것 같지만, 그 생명력도 물과 햇볕과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랑도 오래된다는 말만으로 오래가지 않는다. 마음에 물을 주지 않으면 관계에도 금이 간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오늘은 힘들었다는 말이 사랑의 수분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겠지 싶지만, 사람은 선인장보다 눈치가 느리다. 때로는 아주 많이 느리다.

어느 날 선인장 끝에 꽃봉오리가 맺혔다. 가시 사이에서 올라온 꽃은 뜻밖에 부드러웠다. 나는 한참 바라보았다. 거친 것 안에도 꽃이 살고 있었다. 아니, 거친 시간을 견뎠기에 꽃이 피었는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며 알았다. 사람의 마음에도 가시와 꽃이 함께 산다는 것을.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만 보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할 수 없는 이유다. 가시 뒤에는 오래 숨겨 둔 두려움이 있고, 그보다 더 안쪽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가시에 손을 내밀 필요는 없다. 가시는 실제로 아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참고만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대의 날카로움 뒤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쯤 바라볼 여유는 필요하다. 나를 지키면서도 타인의 속살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거리, 어쩌면 그것이 성숙한 사랑일 것이다.

위로는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다. 옆에 조용히 머물며 물 한 모금을 건네는 일이다. 당장 꽃을 피우라고 재촉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자기 계절을 통과하도록 기다리는 일이다. 믿음과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는 정답보다 곁이 더 오래 남는다.

나는 창가의 선인장에 물을 조금 주었다.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고 하니, 사랑에도 알맞은 거리가 필요한 모양이다. 가까이 가되 짓누르지 않고, 기다리되 외면하지 않는 거리 말이다.

선인장은 오늘도 말이 없다. 대신 가시를 세운 채 푸른 몸으로 살아 있다. 그 침묵이 내게 묻는다. 당신의 가시는 누구를 밀어내기 위해 생겼는가. 그리고 그 가시 안에서 아직 피지 못한 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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