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개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안다 – 반려견과 인간의 웃픈 경계 수필

우리 집 반려견은 자기가 사람이라고 믿는다.

소파에 앉아 내 옆에서 등을 기대는 자세,
라면을 먹으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집요한 눈빛,
퇴근하면 “이제 왔어?” 같은 표정으로 꼬리를 흔드는 태도까지.

그럴 때 나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너는 개란다…”

말은 안 통하지만, 나는 천천히, 자주, 반복해서 말해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나도 내가 사람 이상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건 아닐까?

며칠 전, 새 방석을 샀다.

바닥에 펼치자마자 그 녀석이 먼저 앉았다.
내가 앉으려 하자, 슬쩍 일어나 조용히 자리를 내준다.

그 눈빛은 꼭 이랬다.
‘앉으시죠.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날 이후 방석은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나는 매일 그 자리를 양보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다 TV를 보던 어느 날이었다.

한참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
녀석이 슬쩍 앞으로 와서 딱 앉았다.
내 시야를 가로막으며 말도 없이 버티고 있었다.

“왜 저기 앉았지?” 하고 보니,
그건 명백한 시위였다.

나를 보라는 거다.
TV 말고 자기를 좀 바라보라는 신호.

세상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더 가져달라는,
무언의 요구.

그 순간, 문득 다시 생각했다.
내가 주인인가, 이 녀석이 주인인가?

그래서 나도 하루에 한 번씩
나 자신에게 말해보기 시작했다.

“넌 개가 아니야.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중요한 사람일 순 있어도
세상을 짊어진 존재는 아니다.

반려견과 함께 살면 경계가 흐려진다.
개와 사람의 차이는 말이 통하느냐가 아니라,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려 하느냐에 달려 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개의 눈빛은
내가 누구인지 되묻게 만든다.

“너는 누구야?”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망설인다.

직함도, 나이도, 월급도
그 질문에 대한 진짜 대답은 되지 못한다.

개 한 마리의 시선이
오히려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말해준다.
“너는 개란다.”

그리고 나에게도 말한다.
“넌 그냥 사람일 뿐이야. 그걸로 충분해.”

출근 전, 혹은 지친 하루 끝에
이 말을 떠올리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우리가 누구인지,
누가 인간이고 누가 동물인지
그 경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다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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