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떠난 지 아홉 해, 밤하늘 아래서 쓰는 편지

여보.
당신이 떠난 지 아홉 해가 지났어.
세월은 멀어지고, 기억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밤에 골목으로 나가면 별 하나가 유난히 밝은데, 나는 그게 당신일 거라고 믿고 살아왔다.

신혼집 현관 앞, 당신의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퇴근한 내가 문을 열면 당신은 항상 거기서 허리를 펴며 웃었다.
따끈한 밥에서 피어오르던 김, 부엌에 은근히 배어 있던 참기름 냄새, 저녁 공기를 가르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를 돌던 순간들.
그 시절엔 모든 것이 가볍게 흘렀고,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넉넉했는지를 뒤늦게 알았다.

방학이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여행을 떠났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보다 함께 달린다는 사실이 더 소중했다.
초록이 짙은 들판에서 아이들이 염소를 보며 웃고, 당신은 내 부모님 짐까지 챙기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곤 했다.
“가족끼리 함께 가는 게 제일 좋아요.”
그 말투 속엔 당신 특유의 화통함과 넉넉함이 담겨 있었지.
내가 당신에게 끌렸던 이유도 바로 그 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도 깊은 골짜기가 있었다.
내가 우울의 바닥에 빠져 있던 어느 해, 당신은 말없이 벽을 바라보며 한참을 숨 고르던 때가 떠오른다.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두렵다 말하지 않던 사람.
그럼에도 당신은 내 손등을 조용히 덮어주었다.
그 손길 하나가 나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올렸다.

내가 회복되자, 이번엔 당신이 아팠다.
폐 유육종. 처음 듣는 병명이었고, 의사의 설명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병실 창가로 들어오던 햇빛 아래 누워 있던 당신의 얼굴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기력이 약해져도 아이들에게 부항을 뜨며 웃음으로 버티던 당신—
그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빛난다.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당신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동식 침대에 누워 복도를 지나가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평생 앞장서서 모든 일을 해결하던 당신이, 그 마지막만큼은 조용히 누워 남에게 생명을 건네러 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에서 어떤 것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당신이 떠난 뒤, 집은 오래 비워둔 방처럼 공기가 달라졌다.
식탁 의자 하나가 늘 비어 있었고, 당신이 쓰던 유리컵만이 부엌 한쪽에서 자리만 지켰다.
나는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그 컵을 한 번씩 손바닥으로 만지곤 했다.
온기는 사라졌는데도, 당신이 남긴 습관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삶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을 챙기고, 학교에 보내고, 다시 돌아오는 집을 정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 시절엔 도시락을 싸는 일도 없었지만, 아이들이 정해진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면 그 얼굴을 보고 하루의 리듬을 다시 맞추곤 했다.
어떤 날은 밥이 늦어도 아이들이 말없이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이들과 함께 다시 세운 일상의 시간표였다.

발인 날,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떠나도 마지막 말은 들을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당신 귀에 얼굴을 바싹 대고 조용히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마치 당신이 내 등을 한 번 쓸어준 것 같았다.

세월은 묘하다.
상처를 흐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기억은 오히려 또렷하게 살아오르게 만든다.
이제 나도 나이에 걸맞은 노인이 되어가지만, 문득 생각한다.
조금 더 지나면 당신에게 갈 텐데, 그때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다시 마주칠까.
누가 다음 생에서도 다시 결혼할 거냐고 물으면, 나는 아직도 장난스럽게 대답하지 않는다.
당신이 나를 너무 일찍 두고 갔다며, 아직도 살짝 화가 나 있으니까.

요즘 나는 밤하늘을 자주 본다.
별들이 흩어진 사이로 하나가 유난히 밝게 빛나는 날이면, 당신이 거기 서서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누그러진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결국 또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라는 걸 당신이 떠난 뒤 알게 되었다.

여보.
나는 지금 당장 죽어도, “그래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살고 싶다.
내가 어떻게 살아내는지, 당신이 하늘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밤하늘 아래서 나는 오늘도 중얼거린다.
당신이 내 삶에서 떠나간 것이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나를 비추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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