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가까운 것일수록
제대로 보지 못한다.
거울 없이
내 얼굴을 그릴 수 없듯,
우리는 늘
‘나’를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는 그 사실을
교실 한 편에 세워진
작은 삼각대 하나로
처음 배웠다.
연구수업의 날이었다.
평소처럼 수업을 하지만
그날은 다르다.
교장, 교감,
동료 교사들이 앉아 있는 교실.
나는
내 수업을 ‘보여주어야’ 했다.
칠판의 글씨는
평소보다 단정했고,
목소리는 조금 더 단단했다.
아이들은 조용했고,
나는 침착했다.
겉보기엔, 그랬다.
수업 후, 평가회가 열렸다.
“설명이 길고,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약했어요.”
“목소리 톤이 일정해 집중이 흐려질 수 있겠네요.”
차분한 말이었지만,
귀에는
뾰족하게 박혔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회식 자리의 술맛은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며칠 뒤,
녹화 영상을 틀었다.
처음엔 웃음이 났다.
“내가 저렇게 말이 느렸던가?”
하지만
몇 분이 지나자
그 웃음은 멈췄다.
아이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나는 칠판만 보고 있었다.
말없이 기다리던 아이는
조용히 팔을 내렸다.
그 장면에서,
나는 나를 처음 보았다.
카메라 속의 나는
교사가 아니라
그저 ‘연기자’ 같았다.
정답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던 나.
그 모든 순간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그 화면은
내 삶의 축소판이었다.
기대에 맞추려 애쓰고,
실수를 감추려
단단한 말투로 포장했던 나.
그 영상 속에서
나는 내 진짜 모습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나를
녹화하기 시작했다.
말의 속도,
눈빛의 흐름,
표정의 떨림까지.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은
처음엔 불편했고,
이내 익숙해졌으며,
결국 나에겐
필요한 일이 되었다.
요즘 나는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부부들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소통에 실패하는 모습.
그 장면들을 보며
문득 깨닫는다.
사람은,
자신을 모른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이 필요하다.
비디오, 상담가,
타인의 말,
아니면 스스로 마주하는 침묵.
그것들이
우리를 비춘다.
거짓 없이,
솔직하게.
나는 그 거울 앞에 서서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들의 말에
더 오래 머물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성장은,
자신을 알아보는
순간들의 축적이었다.
오늘도
하루를 마치고
조용히 묻는다.
“나는,
나를 보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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