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느긋한 사람이었다.
아침잠이 많아 일찍 눈을 뜨는 일이 늘 고역이었고, 출근 시간은 시계와의 숨가쁜 경쟁이었다. 밥 한 끼도 천천히, 꼭꼭 씹으며 하루의 속도를 늦추곤 했다.
그 시절엔 ‘슬로우 라이프’라는 말이 나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 이유 없이 바뀐다.
언제부턴가 나는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야 할 일은 미루지 않고 곧장 해치웠고, 식사는 습관처럼 짧아졌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지만, 이내 그녀도 내 속도에 익숙해졌다. 가족 모두의 생활 리듬이 바뀌었다.
출근 시간은 점점 앞당겨졌다.
나는 더 이상 지각을 걱정하지 않는다.
아직 어둠이 남은 새벽, 텅 빈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여백이 생기는 것 같다.
형광등 불빛 아래 조용히 내려지는 커피 한 잔, 그리고 그 곁에 놓인 키보드. 그 순간은 짧지만 깊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나만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시간에 수필을 쓴다.
매일 한 편씩.
35편의 글이 쌓여 있고, 블로그를 통해 하나씩 세상에 올려진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렇게 조급한 사람이 어떻게 매일 ‘느림’을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질문이야말로, 이 변화의 본질을 정확히 짚은 것이기 때문이다.
조급함은 내게서 느긋함을 앗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미리 해둔 일들 덕에 오후는 비워지고, 빈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 된다.
그 시간에 나는 걷고, 읽고, 생각하고, 가끔은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조급함이 준 선물은, 여백이다.
커피를 내려주는 동료 두 분은 늘 말없이 미소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준다.
그들 덕에 이 아침의 고요는 조금 더 따뜻해진다.
말보다는 향기로, 행동보다는 존재감으로 위로를 전하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느긋했던 옛 나를 떠올리고, 지금의 나와 화해하게 된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변화의 이유를 알 수 없어도, 지금의 내가 더 편안하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조급함은 단점만은 아니었다.
삶에 밀려 있던 공간을 다시 내 품으로 되돌려 준 것, 그게 바로 지금의 조급함이다.
나는 여전히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 안엔 느림이 있고, 조급한 손끝에도 여유가 있다.
글을 쓰며 하루를 여는 이 조용한 아침, 나는 더 이상 옛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제는 조급함마저 나를 위한 리듬이 되었기 때문이다.
*관련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