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는 말했다.
“이제는 앉아서 싸.”
그 말은 짧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들어놓았다. 나는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그래야 하는가. 남자라면 당연히 서서 싸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말하자면 ‘남자다움’의 일부였다.
오랫동안 그래 왔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공중화장실 소변기 앞에 서며 배웠던 자세.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방식. 남자란 그런 식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TV 화면에서 내가 평생 외면했던 장면이 펼쳐졌다. 고속 카메라로 촬영된 장면 속에서 소변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가 되어 변기 밖으로 사방팔방 튀어 올랐다. 1m 거리의 수건, 칫솔, 심지어 벽지 위까지 오염은 퍼지고 있었다.
아내는 그 장면을 보며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당신이 서서 쏘면, 이 모든 게 여기 묻는 거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말은 비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삶의 오래된 습관에 대해 ‘이제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조용한 권유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서서 쏴는 단지 요의 해결이 아니라, 나의 존재 방식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자세가 정말 나다운 것이었을까. 집 변기 옆에 고여 있는 얼룩, 청소 후에도 남아있는 찝찝함, 공중화장실 바닥의 끈적거림. 그 모든 불쾌한 장면 뒤에는 내가 당연히 여겼던 ‘남자의 자세’가 있었다.
화장실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우습게 넘겼던 그 말이, 이제는 정곡을 찌르는 것처럼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서서 쏘며 참 많은 것을 흘려보냈다. 물방울, 위생, 배려, 그리고 타인의 평화까지.
한 번은 아이가 물었다.
“아빠, 왜 서서 싸?”
그 짧은 질문에 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까. 남자니까. 그 외엔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되려 내가 더 어색해졌다. 왜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설명할 수 없을까.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그 균열은 점점 커져, 결국 한 번쯤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처음 앉아서 쏴본 날, 어색했고 민망했다. 하지만 변기 주변은 조용했고, 주변에 튄 자국은 없었으며, 무엇보다 아내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앉아 쏴는 불편할 수도 있다. 다소 수고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변화일 뿐, 가족의 평화를 지키는 데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된다. 튀지 않고, 냄새도 줄고, 청소 부담도 덜어주는 이 단순한 습관 하나가, 가정이라는 작은 세계에 안정을 가져온다.
나는 깨달았다.
진짜 강한 남자는 ‘고집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바꿀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앉아 쏴’는 남자다움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배려의 결정체, 가족을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이다. 남성성은 고정된 자세가 아닌,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시대는 바뀌었고, 그에 따라 우리도 변해야 한다.
이제는 집에서는 반드시 앉아서 소변을 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다. 스스로 배운 예의이며, 진심으로 가족을 위한 습관이다.
나는 안다. 이미 많은 남자들이 ‘앉아 쏴’를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머지않아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 습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건 유행이 아니라, 위생과 공존의 상식이 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아이가 또 물어볼지도 모른다.
“아빠, 예전엔 왜 서서 쌌어?”
그때 나는 말없이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땐 그게 당연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시대가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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