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바닷가를 걷다가
모래 위에 누운 조개껍질 하나를 주웠다.
다른 껍질보다 얇고,
표면이 유난히 매끄러웠다.
조용히 햇빛을 머금은 채,
아무 말도 없이 누워 있었다.
괜히 그걸 오래 들여다봤다.
조개껍질을 바라보는 내 눈이
마치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는 것 같아서.
사람의 마음도 꼭 그런 껍질을 닮았다.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쉽게 상하고 부서진다.
우리는 스스로를 꼭 다문 채 살아간다.
말하지 않고,
보이지 않게 감춘 채.
누군가 다가오면
본능처럼 닫아버린다.
그게 더 안전하다고 믿기 때문에.
예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많이 웃지도 않고,
말도 조용했던 사람.
어느 겨울날, 함께 앉아 창밖 눈을 보던 기억이 난다.
그날, 그는 말없이 내 커피에
설탕을 한 스푼 타주었다.
“달게 마셔.”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 사람의 껍질이
그 순간 아주 조금 열리는 걸 느꼈다.
소리 없이, 조심스럽게.
가끔은 말보다 더 깊게 다가오는 손짓이 있다.
아무 말 없이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
그걸 놓치지 않는 사람이,
진짜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왜 서로에게 조심스러울까.
왜 먼저 다가가기보다
서로의 껍질이 열리기만을 기다릴까.
사랑도, 우정도,
결국 누군가 먼저 열어야 시작되는 건데.
이제는 안다.
다정함이란,
기다리는 손끝에 있다는 걸.
억지로 벌리지 않고
그 껍질이 스스로 열릴 때까지,
그 옆에 조용히 있어주는 일.
말을 재촉하지 않고,
침묵마저도 이해하는 일.
삶이란 건
결국 수많은 조개껍질 사이를 지나가는 일 같다.
닫힌 마음,
다치지 않기 위해 다문 말들,
그 안에 숨어 있는 부드러움을
누군가는 알아봐 주기를 기다린다.
조개껍질을 억지로 벌린다고
속살을 이해할 수는 없다.
마음도 그렇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바람이 불고, 햇살이 닿고,
조용한 시간이 지나면
어느 날
그 마음도 천천히,
열릴지 모른다.
속살은 말이 없다.
그러나,
말 없는 그 마음이
오히려 가장 깊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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